- 마침표

자목련
- 작성일
- 2019.1.22
우리 몸이 세계라면
- 글쓴이
- 김승섭 저
동아시아
우리는 어떤 결과에 대해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낸 집단, 그러니까 그들의 지식을 믿기 때문이다. 그건 그들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안다고 것과도 같다. 전문가, 지식인, 보통의 시민이 다다를 수 없는 공부를 한 이들이니까. 과거에 언론과 방송을 무조건 신뢰한 이유다. 그러니 정부에 대한 무한 신뢰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 번쯤 보편적 의심을 실행한다. 이 기사는 진짜일까, 저 논문에는 표절이 없을까. 이런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게 쓸쓸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반론과 검증을 실천하는 일이 반갑고 다행이다. 정보를 공개하는 일에 대해 당당한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승섭의『우리 몸이 세계라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제한된 정보에 대한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특정 지식인만이 알 수 있는 지식(정보)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는 일, 쉬운 것 같지만 얼마나 어려운가. 실험을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 때 우리는 결과만 통보받는 식이다. 실험에 대한 모든 정보는 가려진 채 말이다. 일상에서 습관처럼 정답이라고 믿고 있던 특정 사실이 기득권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얼마나 불평등한가. 사실, 나는 이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에 정말 놀랐다. 권장하는 실내 온도(21도)가 남자의 신체를 기준으로 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규직으로 전환한 여성 직장인의 우울증이 증가했다는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정규직이라는 말만 들으면 우울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 퇴근 후 가사노동에 대한 직시였다. 그건 우리 사회의 가사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통계도 마찬가지였다. 비교 대상이 없거나, 변수의 일부만 적용한 경우가 허다했다.
저자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병원에서의 일상 혹은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했다. 보건 학자라는 것, 학자이나 연구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저자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학자로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알지 못했다. 책은 어떤 면에서는 정보의 공개였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 비판이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인식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였다. 담배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담배 회사는 그것을 회피하고 문화와 과학을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광고 효과를 보고 있었다. KT&G 상상마당의 이미지에 감춰진 전략. 흡연자가 아니기에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매한 적이 없지만 담배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경악했다. 호기심 많은 시기,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의 청소년이나 사회 초년생에게 흡연을 유도하려는 의도. 모두 담배 회사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암에 대한 부분을 봐도 그렇다. 최근 암 발생률 와 함께 완치율도 상승했다. 조기 검진의 이유로 초기에 발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검진 제도의 역할도 크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씁쓸하다. 병원과 접근이 가능한 곳에 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그와 반대의 경우의 이들보다 암 사망률이 적다. 국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모두에게 균등하게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의 종류를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암으로 더 많이 죽는다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 사망의 불평등이 명확한 한국 사회에서 그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개인의 불운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이야기를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에게는 ‘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쁜지’ 되물어야 합니다. (202~203쪽)
우리는 결과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보고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두 개의 화분에 꽃씨를 심었는데 하나의 화분에서는 예쁜 빨강 꽃이 피고 다른 화분에서는 시든 분홍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무조건 빨간 꽃을 원했고 빨간 꽃을 심는다는 이야기다. 두 개의 화분에 조건이 같았는지 묻지 않았고 분홍 꽃은 원래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차별하는 세태를 비유했다. 제도적 차별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내재적 차별이 된다. 분홍 꽃은 빨강 꽃 근처에 갈 수 없고 나는 원래 이런 꽃이라며 자책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는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이런 사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 노동자, 혼혈인, 다문화가정, 난민에 대한 시선 말이다.
제도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적 차별은 사회적 약자가 서 있는 무대가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무대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제도적 차별을 인지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제도적 차별은 삶 전반에 상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차별이 수면 위로 떠올라 부각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165쪽)
과거 흑사병이나 홍역에 대한 부분과 신약 개발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기 전이라 어쩔 수 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 무지가 트랜스젠더, 후천 면역 결핍증 환자를 향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부끄러웠다. 메르스가 유행했던 2015년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의학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곳곳의 저소득 국가에서 소비가 필요한 신약은 왜 개발이 되지 않는 것일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다. 세계 각국의 의사나 과학자가 자국을 떠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의학이나 과학이 세계 모든 인류의 안전을 위하는 건 진실일까?
『우리 몸이 세계라면』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앞으로 들려줄 지식,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궁금하다. 알찬 내용으로 감사한 책이다. 어떤 지식에 대해 안다는 건 용기를 키우는 힘을 만드는 것 같다. 성장한다고 하면 맞을까.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질문해야 한다는 걸 배웠으니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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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