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쓰기

아그네스
- 작성일
- 2019.2.17
정희진처럼 읽기
- 글쓴이
- 정희진 저
교양인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 인식의 성장을 알려주는 척도가 되는 책이다. 2014년 가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3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척 당황했다. 우선 저자가 언급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어본 책이 10분의 1도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해박한 지식의 향연처럼 느껴지는 글 속에 숨겨진 작가의 예리한 관점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6개월쯤 지나고 다시 읽었을 때 느낀 그 신기함을 잊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 저자가 언급한 책들을 여전히 읽지 못했는데 두어 권의 페미니즘 책을 비롯한 다양한 독서가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 뒤로 가까운 책꽂이에 꽂아두고 가끔 꺼내 읽고 음미하며 생각하는 책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저자의 글에서는 배울 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책 속엔 저자의 노동이 있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의 어느 한 문장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그만큼 부단한 사유의 노동이 들어간 책이다.
작가의 독서 경험과 독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프롤로그 [나에게 책은]을 필사했다. 16쪽에 이르는 긴 프롤로그도 처음이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들을 깨닫게 한다.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통찰이나, '여러 권의 책을 한 권으로 읽는 사람과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으로 읽는 사람'이 있다는 말, '베스트셀러는 특성상 지적 자극을 주기 어렵다'면서 '대중은 균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책을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 생각하기를 권하'는 조언,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대개 서울 출신, 남성, 서양,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학벌 좋은' 사람이 쓴 책'이라고 지적하며 '사회는 모두 이들 주류의 시각 안에 포섭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진부한 관점의 지당하신 말씀으로 종이를 낭비하는 책은 킬링타임을 넘어 지구 자원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라는 일갈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하도록 이끈다.
그 후 저자가 언급한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런저런 책의 유혹에 이끌려 다니며 슬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밖에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 책 내용의 상당 부분, 아마도 3분의 2이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차이가 뭘까? 중요한 것은 '관점'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비판적 페미니즘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의 어느 면을 언급하더라도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어와 프레임의 관계를 다룬 박만규의 <설득언어>를 보면 '사고하기 위해서는 관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말하는 관점에 따라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그 프레임이 다시 관점을 유도하고 말을 규정하는 거다. 그렇게 보면 비판적 페미니즘의 사고와 창의적 사고는 매우 가까운 지점에 있는 게 아닌가. 둘 다 기존의 프레임을 깨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페미니즘 필독서이자 비판적 사고와 읽기,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2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