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문학 리뷰

nina2797
- 작성일
- 2019.2.20
산책하는 마음
- 글쓴이
- 박지원 저
사이드웨이
걷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걷기 시작한 걸까.
산책이라는 말이 주는 넉넉함과 평온함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어떤 여유와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을때, 걷기 시작한 것 같다. 극복하기에 너무 벅찬 고난과 아픔의 시절을 지나갈때, 그때부터 걷기 시작한 것 같다. 참 희한했다. 그냥 걸었고, 걸으면서 조금 울었고, 걸으면서 바람 소리에 나를 맡겼고, 걸으면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조금씩 편안해졌고, 앞으로는 결코 웃지 못 할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건강해졌다. 몸도 마음도.
걷기, 어슬렁거리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걸어 다니는 소위, 산책이라는 것이 그런 아픈 시간을 건너가게 했고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책, <산책하는 마음>과도 연(緣)이 닿은 것 같다.
산책하는 일엔 목적이 없다. 산책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힘써 이루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달성할 목적이 없으니 애초부터 이 일엔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 없음'을 통해서, 산책은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어떤 일이 될 수 있다.(p.68)
산책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산책은 자유로운 일이며,허허로운 일이다. 산책은 내키는 대로 걸어 나갔다가 걸어 들어오면 '장땡'인 일이 분명한 것이다.(p.74)
화창하니까, 비가 오니까, 봄이니까, 눈이 내리니까, 밖에 나가 서성 거린다. 나를 부르는 건 자연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보여 주는 세상을 가슴에 담으며, 나를 느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본연의 나, 세속의 욕망을 잊은 그런 말간 나를 만났다. 나는 믿는다. 그것이 치유라고. 산책의 힘이라고.
나는 혼자서 산책하는 것을 즐기고, 산책 중 음악은 듣지 않는다. 산책하는 시간은 자연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매일 매일 자연이 연출하는 오감이 다르듯, 나의 내면도 대체로 변화 무쌍하다. 자연과 나의 만남이 완전한 충만으로 빛을 내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자연과 나 사이의 불화로 몸이 불편한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좀 일찍 귀가하여 쉬면 된다. 대신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반나절도 넘게 쉬엄쉬엄 돌아 다닌다. 중요한 건 밖에 나와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면에서,산책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일은 아무런 준비나 훈련도 필요치 않고 어떤 진입 장벽도 없다. 산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 모두에게 놀랍도록 풍요롭고 '럭셔리'한 일상의 경험을 선사해 줄 수 있다. 우리가 그런 풍요로움과 럭셔리함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소소한 마음의 여유를 품을 수만 있다면.(...) p.167
글쓴이가 산책을 즐기는 산책자이므로 이책은 당연히 산책에 대한 예찬이 넘쳐 흐른다. 조용히, 은은하게.
산책을 즐기는 나에겐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잘 통하는 이와 나란히 함께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루의 고단함과 인간적 번뇌로 무거워진 몸과 마음이 동네를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좀 더 차분해진다. 그리고 좀 더 누그러진 마음으로 자신을 , 세상을 다독거릴 힘이 생긴다. 모든 번뇌에서 해방되지는 않지만, 쉼표 하나 찍을 여유를 찾게 된다. 걷기의 마술 같은 능력이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단상들과 사색을 주로 서술했는데,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산책을 즐기시는 대부분의 산책자들의 내면의 풍경이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글쓴이가 부러운 점이 한가지 있었다. 남성이라는 점.
대체로 산책길은 한적한 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둑 어둑해지면 산책은 꿈도 못꾼다. 여성이기에 시간적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공간적 제약도 물론 있다. 인적이 드문 등산로나 동네 앞산, 뒷산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는 잘 안 가게 된다. 사실상,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항상 안전이 일순위라 시공간의 제약이 따르는 점이 아쉽긴 하다. 글쓴이가 저녁 식사 후, 인적 끊긴 공원을 산책하는 대목을 읽을 땐, '좋겠다'라는 부러움이 절로 생겼다.
밤산책은, 인적 드문 고요한 곳으로의 밤산책은 참으로 근사한 일인 것 같다.
물론 나도 한 여름엔 밤산책을 한다. 하지만 일부러 자동차를 타고 나가 사람이 많은 관광지 호수 주변이나, 바닷가를 산책한다. 단지 안전을 위하여 여름밤의 폭죽 소리를 감내하며 비릿한 밤공기에 위로를 받는다. 다 좋을 순 없으니, 가진 것에 자족할 뿐이다.
산책하는 이는 세속의 반경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뼘의 여백을 선선히 채워가고 있다.(p.202)
그래서, 산책은 무덤덤한 일이다.무덤덤함......걷다가 마주친 무얼 그리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고, 스스럼도 없이, 그냥 무심하고도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가는 힘. 나는 이런 무덤덤함이야말로 산책이란 취미가 품고 있는 참으로 멋진 함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p.208)
걷는 행위 특유의 리드미컬함은 우리네 생명의 박동과 유사하다. 그 본원적인 리듬감과 감각적인 친근함은 우리를 정말로 끊임없이 걷게 만들 수 있다.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일정에 여유가 있으며 신발과 옷가지만 불편하지 않다면야, 우린 모두 한두 시간은 너끈하게 걸을 수 있지 않은가?(p. 224)걷는 사람들은 강하고 온후하다. 걷는 일엔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이 있어, 걸음을 옮기는 누군가의 모진 아픔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설령 그가 지극히 불행하고 망가진 삶을 버텨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공간에서 그 곳의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 그의 가난한 마음을 깊은 차원에서 위로해줄 수 있다.(p.250)
생생하게 그려지는 글쓴이의 모습. 퇴근 후, 또는 늦잠을 잔 느긋한 휴일, 든든히 식사를 마치고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현관문을 나서는 평범한 한 사람. 눈에 익은 골목을 누비거나 동네 어귀의 잘 정돈된 공원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그 흔한 한 사람을 상상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일 매일의 기상이 변하듯, 매일 매일 다른 온도의 일상을 살아낸 그는 내딛는 걸음 하나 하나에 쌓인 피로를 조금씩 흘려 보내며 마음을 다독일 것이다. 비워 낸 그 자리에 자신의 우주를 깨워 생기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 낼 것이다.그냥 걷고 싶은 날도 있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걷기도 한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걷는다.특히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갓난 아이가 엄마를 찾아가듯 나는 걷고 있었다. 두 발로 걸으면 아픔이 사라지는 치료약이 우리몸에서 나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시급했던 치유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온전히 산책을 즐기게 된 것 같다. 우주, 혹은 자연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고, 자연의 일부로서의 나를 성찰하게 되었고 삶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냥 무심히 산책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글쓴이도 나와 같았음을 알 수 있어 묘하게 설레였다.단, 책을 읽으며 산만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데, 두 번, 세 번 읽게 만들었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왜일까, 이유를 살펴보니 유명인들의 말이나 글귀의 인용이 많아, 오히려 글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던 것 같고, 또 하나는 강조할 구문이 아닌데 습관적으로 문장의 순서를 바꾸어 쓰는 바람에 주어 동사를 다시 찾아 의미를 되새겨야 했음을 밝힌다.산책이라는 단조로운 소재로 한 권 분량의 책을 쓰자니,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산책 중의 일화를 바탕으로 단상이나 사색으로 연결 되었다면 더 잘 읽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친 인용과 사변적 서술이 독서를 지루하게 만든 것 같다.그래서 나는 산책을 한다.우리를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 어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p.262)그래서 나는 산책을 한다. 두 다리가 만들어 내는 신비한 힘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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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