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soo1491
- 작성일
- 2019.2.27
그리스인 이야기 3
- 글쓴이
- 시오노 나나미 저
살림출판사
1편에서 그리스 국가의 기원과 발전, 그리스를 대표하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그리고 그리스 국가 연합의 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다루었고,
2편에서는 페리클레스가 정권을 잡으며 시작되는 아테네 황금시대와, 그의 죽음 이후 시작된 우중정치의 시작, 혼란의 끝에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아테네의 패배를 다루었다.
3편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후의 패배한 아테네의 쇠락 뿐만 아니라 승리한 스파르타를 비롯,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의 몰락의 과정속에 등장하게 되는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제국 건설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테네의 쇠락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 후 스파르타에 의해 세워진 30인 과두정권은 혼란만 야기한 채 붕괴된다.
이런 혼란은 아테네 정치의 불신을 가져오고, 문화 경제적으로 번영 번화한 아테네로 몰려오던 외국인의 발길을 끊고, 더 나아가 그리스 국가의 인재들을 해외로 유출하게 되는 부작용까지 낳게 된다.
저자는 이를 그리스 최대의 비극이라 평가한다.
전쟁에 승리한 스파르타는 폐쇄된 국가운영 체제에 경제력은 미약했다.
실질적으로 그리스 국가의 문화와 경제를 이끌던 아테네의 패배는 그리스 전체 경제력의 몰락을 야기했고,
실업자가 된 병사들은 헐값에 페르시아에 용병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페르시아 내전에 용병을 파견한 스파르타에 대한 보복으로 페르시아 황제의 소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벌을 불렀고, 결국 에게 해의 동쪽 이오니아 지방은 50년 뒤 알렉산드로스의 발이 닿기까지 페르시아 제국에 편입되고 만다.
테베의 부상과 한계
스파르타에 대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불신은 테베의 군사적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스파르타를 타도하고 그리스 국가의 패권을 잡게되는 테베의 두 영웅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스파르타를 제압하고 그리스 패권을 잡았지만 두 사람만으로 그 패권을 이어가기에는 테베라는 나라가 너무 작았고, 후계를 떠받들 인물이 없었다.
펠로피다스에 이어 에파미논다스가 사망한 기원전 362년 이후 시대를 저자는 “이후 그리스에는 아무도 없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떠오르는 마케도니아(필리포스의 등장)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시대까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인 취급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변방의 고만고만한 나라에 불과했다.
이 신들이 등을 돌린 땅에 영웅이 등장하니 바로 필리포스다.
테베에 인질로 가 있던 필리포스는 아버지 사망 후 귀국하여 왕위쟁탈전을 치루고 23세에 마케도니아 왕으로 등극한다.
그가 테베에 있는 동안 테베는 두 영웅에 의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필리포스는 테베의 군사개혁과 강국으로의 발전과정을 생생이 보고 배울수 있었다.
왕에 오른 필리포스는 군사개혁을 실시하여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밑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그 핵심은 첫째, 중무장 보병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농민층까지 확대하여 군사수를 확보하고
둘째, 팔랑크스라 불리는 6.5미터의 장창으로 무장한 밀집대형을 대형화 시킨다.
결국 남쪽으로 진격한 필리포스는 아테네를 비롯한 연합군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궤멸시키고 그리스의 지배자로 등극하나, 기원전 336년 46세의 나이로 암살당하고 만다.
영웅의 등장, 알렉산드로스
20세에 마케도니아 왕에 오른 알렉산드로스
13세부터 16세까지 스파르타식 군사교육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교육을 받은 알렉산드로스는 약관의 나이였으나 리더십과 권위에 있어 왕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에서 중요한 3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어린시절부터 친구이자 눈빛만으로 통하는 헤파이스티온, 원정 중 헤파이스티온의 사망으로 알렉산드로스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둘째 전장에서 목숨을 맡기고 누볐던 애마 부케팔로스
셋째 어려서부터 스파르타 교육을 같이 받던 동료 집단
21세에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이 출발은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땅을 밟는 마지막이 된다.
32세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바빌론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오늘날 지구본을 돌려보며,
그가 정복해 나간 지역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입이 벌어진다.
2400여 년전 그리스 동쪽 지역으로부터 오늘날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 파키스탄과 인도의 북부까지의 광대한 지역이다.
인도 북부에서 병사들 파업이 없었다면 오늘날 배우게 될 그의 점령지역은 어땠을까?
더 이상 동쪽으로 진출하길 거부하는 병사들을 강제할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스는 남쪽으로 돌아 귀국길을 돌아오다,
서방원정을 앞두고 사망한다.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서방원정을 계속하라는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고,
후계자 쟁탈전 속에 그의 가족(어머니,아내,아들)이 살해되는 사건과 측근들의 비극적 말로를 겪게 되며 그가 이룩한 제국은 크게 넷으로 분할하게 된다.
2400여 년전 시대와 오늘날의 나이 개념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21세에 시작해 32세까지 오늘날 시각으로 철부지 청년의 나이에 그가 이룩한 업적은 실제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알렉산드로스 이후 명장으로 꼽는 3인 한니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카이사르도 나이로나 업적으로나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정벌기간 중에 일부 반란 사건이 있기도 했지만 어린나이의 왕에게 충성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낸 것에는 그만의 뛰어난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독단적으로 결정했지만 유연성을 겸비하였다.
항상 적은 군사수로 몇배의 적과 싸웠지만 다이아몬드 대형의 맨 앞에서 앞장섰고 군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때로는 같은 막사에 잠을 자며 함께 했다.
기본적으로는 그의 타고난 천재성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 천재성에 어릴 때부터의 스파르타식 군사교육을 이겨낸 인내심, 당대 최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의 교육,
무엇보다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위대한 리더십을 통한 역사적 업적이
어린 청년인 그에게 2400년이 지난 지금도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있는 것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