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리뷰

신통한다이어리
- 작성일
- 2019.3.3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 글쓴이
- 댄싱스네일 저
허밍버드
1.
나의 정치적 성향을 말한다면, 나는 여당편도 야당편도 아니다. 주로 민주당을 많이 찍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100% 민주당을 찍지는 않는다. 가끔은, 제1야당외에 다른 정당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제1야당이라 불리우는 (그러니까 지금은 - 아마 오래지 않아 그도 바뀔 것 같지만) 그 당을 잠시잠깐 지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되도록이면 문제가 조금이라도 적은 당, 그리고 나한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당을 지지한다. 지금의 행태를 보면, 제1야당도 내년 총선 이후 형편없이 무너질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이럴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게으름이다. 그냥, 마음껏 손 놓고 충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잠깐이라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 게으름은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의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다음 총선에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해 하면서 "소신"까지 버리면서 그저 눈앞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사람들. 그 분들께도 게으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누가 오직 개인의 지나친 "욕심"만을 좇는지는 알고 있다. 자신의 작은 이익, 그 이익을 좇는 사람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의 작은 이익을 좇으면서 사니까. 그러나, 자신의 지나친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행태들은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행태들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그것 역시 나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지만,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가 조금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게으르다고 욕 먹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가 게으르다고 나에게 욕을 한다면, 나는 충전 중이라 항변하면서, 그 사람에게 적절한 반항을 해 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쓰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나는 당장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하게 될 것이다.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이기적인 거니까. 최근 나에게 상처를 주는 두권의 책을 읽었다.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한권은 대충 훑었더니 정말 어이없는 내용이었고, 한권은 읽다가 보니, 어느 대목에서 은근히 나를 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를 직접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나에게 반성을 일으키기는 커녕 반발심만 키워놓았고, 나는 누군가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2.
한편, 힘들 때만 나를 찾는 타입의 자존감 도둑도 있다. 물론 힘들 때 나를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그만큼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거니까. 하지만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 법. 때와 장소 없이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뱀파이어처럼 당신의 기를 쪽쪽 빨아먹고 나서는 매번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스톱!"을 외쳐야 한다.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너무 오래 해 주다 보면 서로를 점점 당연시 여기게 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껴야 할 적정선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듯 계속 해 주다가는 자칫 나의 자존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 p.124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는 일러스트를 주로 그려온 댄싱스네일 작가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다. 일러스트 작가답게 그림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과 글의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에세이의 특별한 재미인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어떤 선을 그려놓고, 글을 만들었다. 조금은 특별한 만남이 될 듯한, 댄싱스네일의 에세이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지만, 그러나 평온함을 전달해주는 문장들. 그 문장들과 그림들에 푹 빠져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렸다.
그간에 내가 달라지고자 해 온 노력들은 실존하는 나를 완전히 부정한 채 가짜 이미지를 연기해 보이려 애쓴 것이었다. 그러니 매번 쉽게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진 것도 당연했다. 여전히 내가 가진 모든 면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은 비현실적 낙천과 무조건적 긍정을 외치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의 나도 괜찮지만 또 다른 것을 해 봐도 좋지' 정도로 스스로와 타협하며 살아가려 한다.
새로운 내가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사는 것도, 더 부지런해지는 것도 아닌 사소하지만 새로운 일에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는 용기다.
- p.243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변하려 애쓰지 않았던 것들이 오히려 나를 즐겁게 하고 있으니. 그렇다, 나의 과거를, 나의 성격을, 나의 지금 모습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지금의 나도 괜찮으니,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겠지. 나 아주 잘 살아왔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잘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의 나는 그냥 지금 내 모습에 조금만 새로운 것을 추가해주면 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가.
3.
만약 빈 컵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컵이 반이나 비었네!" 혹은 "에이, 컵이 반밖에 안 비었네."
이 경우엔 '비워진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반대로 완전히 빈 컵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컵에 꽃을 꽂아 두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마 그에게는 완벽한 양의 물이 든 컵이 될 것이다.
- p.246
적어도 에세이라면, 최소한 한 편쯤은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시각들을 심어놓음으로서 비로소 생각이라는 그 울타리 안에 나를 집어넣을 수 있고, 그 생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한번쯤은 치열하게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를 보면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모두 다 잡아낼 수는 없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에 그 스쳐지나갔던 생각들이 나에게 체화되어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겨난다.
4.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 에세이들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또는 저자의 새로운 생각들을 담았을 때, 그리고 그 생각들이 누군가의 비난이 되지 않을 때, 그 에세이들은 내게 마치 영혼의 양식같은 편안함을 준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도 내게 편안한 마음을 제공해 주었다. 소소한 그림들과 소소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덕분에 새롭게 출발하는 나의 마음은 흐뭇하다. 그리고 나는 이와 같은 에세이를 또 찾게 될 것 같다. 어떤 에세이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줄지, 무척 기대되는 앞날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을 통해 허밍버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좋아요
- 6
- 댓글
- 1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