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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 작성일
- 2019.3.6
미투의 정치학
- 글쓴이
- 정희진,권김현영,루인,한채윤 공저
교양인
미투, 광풍처럼 한국 사회를 뒤덮은 지난 2018년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지금도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 학교 등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연루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 왜 이런 일들이 근절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들이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사회학적인 문제로도 부각했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정치학적인 관점으로 다가가고 있는 책이라 생각이 든다.
4명의 저자가 각자 다른 얘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통칭해서 묶어 정치적인 논점으로 논의가 되는 점을 저자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색깔이 분명한 얘기들이 미투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가 볼 수 있게 한다. 미투와 관련하여 지식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권김현영은 안희정 사건 재판을 방청하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기술하고 있다. 분노가 들어간 사건의 왜곡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 본질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언론의 지나친 개입에도 불편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진보적인 남성들이 생각하는 인권, 정의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성문제에 대해 유독 관대한 그들의 가치, 이념을 생각해 보게 한다.
20여 년 내가 처음 성폭력 사건을 방청했을 때만 해도, 그런 식으로 진술하는 가해자를 보고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재판에서 이길 자신이 있는 가해자만이, 저렇게 준비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안희정의 저 한 문장을 듣고 나는 매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p52) |
어떻게 지위가 타인의 인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바로 이 문장이다. 문장도 비문이다. 안희정은 최후 진술에서까지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생명력이 있다는 뜻이리라. 자신은 잘못이 없고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생각하면서, 자신의 정치 생명은 지속되리라는 자신감의 발로라 보여 진다. 이런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법정을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4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재판부가 김지은의 진술을 배척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최초의 위력 간음이 다음날 아침 안희정이 좋아하는 식사 메뉴를 찾으려 한 것은 통상의 피해자들이 보이는 반응과 다르다는 것, 둘째, 사건 이후에도 제 3자에게 안희정에 대한 존경과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 셋째, 피해 후유증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 업무를 잘 수행했다는 것. (p53) |
재판부는 판단을 정말 정치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1차 재판에서 안희정이 승소한 이유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재판은 정말 수많은 직장인이 겪는 업무 태도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 아님 모른 척한 것일까? 갑을 관계에 있는 숱한 을, 직장인은 견디는 법부터 배운다. 그것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이니까? 이런 사실을 간과한 재판부를 안희정 측은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정희진의 글은 미투 운동을 중심에 두고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즉 미투의 ‘선별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심각한 가정 성폭력과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에 대한 자의성도 같지 않다. 이런 점들이 동등의 의미를 지니는 운동에 많은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미투 운동이 혁명에 비유되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미투 혁명’,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혁명’보다 더 정확한 명명은 없을 것이다. 모든 혁명은 미완이라는 의미에서, 곳곳에 반동이 매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 구성원에게 충격과 격세지감을 안겨주었다는 면에서, 혼란 속에서는 늘 장사꾼과 ‘밀정’이 활보한다는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준비된 혁명은 없다. 언어도 제도도 구비되지 않은 혁명, 대안 없는 혁명, 매번 실패하기 때문에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미투는, 혁명이 분명하다. (p84) |
한채윤의 글은 춘향전을 재해석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생각해 보게 한다. “대체 남성에서 없는 정조 관념이 왜 여성에게만 있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자체를 인권 침해요 성폭력으로 보고 있다. 즉 성문제에 있어 동의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입장에 대한 문제 제기다. 정조를 의무로 인식해 법적 제재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못내 분개한다. 문제는 성에 대한 차별이다. 역사 속에서 그 문제를 인식해 보도록 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만든 강력한 정조 이데올로기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최선을 다해 거부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마치 기계가 스위치만 누르면 작동하듯 여성은 정조를 지키려고 본능을 작동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 까닭에 법은 거부의 행동은 즉각적이고 동의는 침묵으로도 표현된다고 이해하며 불가능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다룬다.136 |
지극히 남성 중심의 성적 편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만 왜 성관계에서 목숨을 걸고 거부의 몸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정조라는 이상한 괴물이 만들어낸 결과다. 오늘도 법정에서는 이런 것이 무기가 되어 있다. 설사 피해자가 원하지는 않았다 해도 상대의 의지를 꺾을 정도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 법은 안희정 편을 든 이유가 되었다. 과연 그것이 이유가 될까?
루인의 글은 여성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논쟁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일부에서 페미니즘과 퀴어를 선명하게 진영화 하려는 흐름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즉 페미니즘의 논리로 이 문제 재해석하여 인식하려 한다. 모두가 동등하게 권리를 부여받는 인식을 요구한다.
젠더 개념이 인식되지도, 합의되지도 않는 한국 사회에서 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며,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가를 질문한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누가 ‘진정한 여성’이며 폭력의 개념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문제까지 일깨운다. 젠더의 다양한 인식 문제가 이 부분에서 다뤄진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미투’ 어려운 문제다. 오늘날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이 운동,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고, 다양하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잘못된 것이 밝혀지는 것이라면 의당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미투’의 문제가 긍정적으로 인식되어 사회 발전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분리가 아니라 화합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을 읽으면서 긍정을 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본질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할 사회적 구성원들, 그것이 어떤 성이든 대등하고 나누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의 마음으로 만나는 우리들의 언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리가 주된 얘기가 되면 상처가 커진다. 분질을 망각하면 상처가 더 커진다. 조화와 인내, 그리고 사랑이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기억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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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