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일기

코니
- 작성일
- 2019.3.13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 글쓴이
- 신현호 저
한겨레출판

요즘 뉴스를 보면 의견의 뒷받침을 위해 통계와 그래프를 이용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많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통계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높아진 것도 원인이 될 수 있겠고, "가짜뉴스"에 대한 논란이 전세계에서 거세지는 상황에서 통계를 증거로 이용하여 신뢰도를 높이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물론 데이터 자체가 많아지기도 했고, 또 이를 분석하는 기법과 기술의 발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요. 하지만 오히려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라는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 책이 데이터와 통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룬 책인 줄 알았습니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분야이고 사람들의 관심도 높다 보니 관련된 단행본도 굉장히 많이 출간되고 있어서요.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습니다. 데이터와 통계 및 그 분석 자체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논문과 데이터를 통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책이라는 설명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이쪽도 제가 즐겨 읽는 분야라서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본 내용도 꽤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었거든요.
책의 목차부터 보면, 1부 "사기꾼 앞에 선 데이터 전문가 ― 인간 심리에도 패턴이 있다"에서는 우리의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도박사의 오류, 무행동의 비용, 노벨상과 초콜릿의 상관관계 등 행동경제학이나 인간 심리에 대한 책에서 자주 다루는 통계들이 많이 있는 부분이었어요. 2부 "쓰레기통을 뒤지는 데이터 전문가 ― 하찮은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에서는 더 다양한 분야를 아우릅니다. 인도에서 화장실 소유율과 혼인율에 관계가 있는 이유, 플라스틱 재활용의 실태, 가구당 책 보유량과 인지능력의 상관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이 있는 부분입니다. 3부 "페미니스트가 된 데이터 전문가 ― 데이터, 여성의 무기가 되다"에서는 우리 사회의 젠더 격차 실태 및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의 실효성을 살펴봅니다. 딸들은 아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정치할당제는 과연 역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정책인지, 아빠에게 육아휴직을 강제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 부분이죠. 4부 "8시 뉴스를 튼 데이터 전문가 ― 권력자들은 어떻게 속이는가"에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를 파악합니다. 정치인의 외모는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기부금의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지 등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죠.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전부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 그리고 특히 흥미로웠던 내용만 살짝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책은 짐작할 수 있듯이 모든 챕터에서 다양한 데이터와 그래프가 총출동하는데요, 데이터가 저의 어림짐작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극단적인 결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에서 한국은 꼭 극단적으로 한 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 책에 소개된 것만 짚어보자면 성인 남성 흡연률, 인적 네트워크 격차(대졸자와 고졸 미만자의 차이), 남녀 임금 격차와 남녀 고용률 격차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고,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가구당 평균 책 보유량, 여성 의원 비율과 유리천장 지수(숫자가 높을수록 남녀 간 평등에 가까움)는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것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좋은 것에서는 하위권을 맴돌다 보니 차라리 OECD를 탈퇴하라는 자조섞인 의견도 나오곤 하죠. 하지만 우리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뉴스도 당연히 나쁜 것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고요.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이 데이터들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겠지요.

여러 데이터 중 제 눈에 띈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위의 그래프는 그 중 하나입니다.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졸자와 고졸 미만 학력자는 각각 82퍼센트와 42퍼센트가 '그렇다'고 답변해 격차가 40퍼센트 포인트에 이르렀는데, 이 격차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큽니다. 놀랍게도 OECD 평균은 고작 8.6퍼센트 포인트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공공기관의 취업 청탁과 그에 따른 청년들의 분노를 언급하는데요, 저는 좀 다른 이야기도 해보고 싶습니다.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소수가 아닌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는 놀라울 만큼 약자의 목소리를 아예 지워버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갭투자를 한 다주택자의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도서관장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위해 파업하자 '우리 공동체를 이끌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금기'라며 응급실 폐쇄에 빗대어 글을 쓰며 이것이 일간지에 실리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37만 가구가 고시원과 비닐하우스 등의 주택이 아닌 곳에 살고(출처), 근로자 1519만명 중 472만명은 연 2,000만 원 미만을 벌고(출처), 저학력층 중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늘고 있으며(출처) 폐지를 줍는 노인은 80~175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이들 대부분은 하루에 만 원도 벌지 못하며 정부는 올해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출처1)(출처2).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대졸자와 고졸 미만자의 격차는 극심한 수준이고요(저 데이터는 인적 네트워크 격차만을 나타낸 것이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슷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죠). 이들의 수를 다 합치면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습니다. 가끔 위와 같은 통계에서만 드러날 뿐이고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책에서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전체 4부 중 한 부를 통째로 젠더 문제에 할애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3부에서는 젠더 격차의 실태에 대한 데이터를 비롯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데이터를 다루는데요, 그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딸 효과(daughter effect)"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이는 딸을 키우는 것이 아빠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딸을 둔 아버지는 딸을 키우면서 젠더 이슈에 눈을 떠 점차 친여성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투운동 이후 사회변화에 대한 의견 조사'가 발표되었는데, 남성 중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50대가 72.7%로 가장 높았고 이어 40대 68.1%, 30대 52.1%였다고 합니다(출처). 아마 여기에도 "딸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을까요?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는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물론 모든 데이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진행했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의 데이터가 훨씬 많은데, 저자가 언급하듯 미국은 정말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공개하며, 의회와 행정부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장기적인 조사를 맡깁니다. 특히 정부 정책의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서 10년 이상을 바라보며 끈질기게 노력하기도 하고요. 이런 점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데이터의 중요성, 데이터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 등을 배우며 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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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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