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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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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신영복
글쓴이
이재은 저
헤이북스
평균
별점9.7 (14)
방철

 

늦었다. 기차는 벌써 떠났고 난 학교를 졸업해 버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간 우리가 성현의 말씀을 소홀히 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본의 공격이 지난 시간 더 집요했고 날카로웠다.

이제 나는 생각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해서 존재하는 몸이다. 늘 앞서 걸어가는 것은 나의 정신이 아니라 나의 몸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그나 그녀의 정신보다 그나, 그녀의, 몸을 먼저, 본다. 그리고 이 몸은 어느새 우리의 정신보다 더 실질적인 우리의 소통방식이자 우리의 언어가 돼 버렸다. 어떻게, 잘생긴 남자라면 그는 착하고 성실한 남자이다. 예쁜 여자라면 착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다. 지구를 구하는 어벤져스의 팀원을 생각해 보라. 그들 중 미남, 미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제 외모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나 그녀의 외모 대신 능력이나 됨됨이를 선택했다면 여러분은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한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시는 공기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생활의 텍스트는 우리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우리는 몸, 마음, 영혼이 아니라 몸, DNA, 환경으로 구성된 삼중의 존재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를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를 바꿔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환경을 바꿔야 한다. 핸드폰을 멀리하고 텔레비전을 끄고 라디오마저 침묵케 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시대에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자본주의이다. 재물이 본바탕인 시대에 돈만 많이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을 아주 잘산 것이고 마법사의 마법 지팡이를 가진 것과 진배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생활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만능키인 마술 지팡이를 뜬금없이 내려놓는다는 말인가. 자본주의의 진면목이 착취와 수탈, 혼돈과 탐욕이기에 이것들을 끝장내기 위해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서 마그마에 던져야 하는가.

암만 생각해도 연대를 이뤄야 하는 사람은 들풀 같은 우리 민초가 아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고 살아야 할 사람은 김지하가 말한 오적이나 그와 같은 사람들이다. 사실 배려나 연민, 공감과 같은 단어는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고안한 삶의 방편이다. 조금 더 나은 생존을 위해 이 땅의 가난한 독자들이 얼마나 지겹게 들어 왔던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물질적으로 궁핍하니 마음만이라도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가진 자들이 선생의 독자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놀랍도록 빨리 변할 것이다.

시대정신을 벗어나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선생은 여러 번에 걸쳐 탈정을 말하지만 선생의 이 놀랍고 무모한 발상이 탄생한 곳은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존재의 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을 성찰하는 감옥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나는 탈정이, 내가 우물 밖 개구리가 될 자신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난 자신이 없다.

선생의 말씀을 담은 필자의 책의 편집과 구성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십계명을 생각나게 하였다. 물질에 경도된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매 순간 십계명을 실천해야 할 만큼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일이 숨가쁘다는 필자의 우려가 녹아 있는 책의 얼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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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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