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19.4.25
당신이 옳다
- 글쓴이
- 정혜신 저
해냄
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2019.3.25.
sanbaram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이 아프다. 외래환자의 80∼90%가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심인성 환자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이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고, 술이나 게임 심지어는 마약의 힘을 빌리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에 의지할 때 남는 것은 망가진 몸과 허무한 마음뿐이다. 공감에 의한 마음 치유의 길을 제시하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최근 15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찾아낸 ‘적정심리학’은 그녀가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린 ‘공감과 경계’를 기본으로 한 치유법이다. 저서로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등 다수가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들어주기 어려운 자신의 끔찍한 고통에 집중하고 깊이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의 의사들은 약물 처방을 우선한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말한다. 어떤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항상 옳다고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한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가 왜 우울증인가. 은퇴 후의 무력감과 짜증, 피해 의식 등이 어떻게 우울증인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은 비정하고 무책임하다.(p.90)” 이런 문제들이 흔하게 마주하는 삶의 일상적 숙제들이고 서로 도우면서 넘어서야 하는 우리 삶의 고비들이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드러난 증상만을 가지고 진단을 확정한다. 다른 어떤 요소도 진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진단 체계를 만들었다. 표면적인 증상만 같으면 같은 질병이라 한다. 우울증 진단을 내릴 때는 원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중심으로 하면서, 진단이 확정되면 갑자기 우울증은 생물학적 원인으로 생기는 거라며 약물치료가 치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약물의 도움으로 증상이 줄어 한결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약물이 우울증 치료의 전부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저자는 기존의 정신의학 체계의 허점을 지적한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9)”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 그래서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p.125)”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내’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그’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의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p.239)”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좋은 질문은 따로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 그 태도가 더 공감적이고 치유적 이라고 한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p.310)” 그럴 때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하는 질문을 통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태가 공감 혹은 공명이라고 말하는 저자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나와 너에게 공감하며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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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