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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조는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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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진화
글쓴이
리처드 프럼 저
동아시아
평균
별점9.3 (17)
봄볕조는병아리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세상에 발표한다. 거기서 주장한 '자연선택론'은 이제 거의 생명의 진화에 있어 정설이 되었다. '자연선택론'은 한 마디로 유용성을 중시한다. 생존에 적합한 형질만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숫사슴의 거대한 뿔 같은 것. 그건 도망칠 때마다 자주 나무에 걸려 생존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존재였다. 더구나 그 정도로 뿔을 자라도록 하는데 몸의 에너지를 대부분 써버려 단순히 살아가는 것조차 유용하지 않았다. 역시나 화려하지만 쓸데없이 커서 동작을 굼뜨게 만들기 때문에 포식자에게 쉽게 잡아 먹히게 만드는 공작의 꼬리까지 포함하여 생존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 없는 아름다움'이 생태계에 그토록 많이 있는 것을 본 다윈은 아무래도 자연선택론 외에 다른 것이 또 진화의 법칙으로 작용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1871년에 발표하게 된다.


 '자연선택'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성선택'은 번식을 위한 것이다.

 '성선택'이란 배우자 짝짓기 과정에서 같은 암컷을 두고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개체가 형질을 진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숫사슴의 커다란 뿔도, 공작의 꼬리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오직 자신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암컷에게 간택받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납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윈의 논지에 대해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발표될 당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이 진화에 있어 지고의 권위를 갖는 지위로 오르는 동안 '성선택'은 내내 그 그늘에서 무시 받고 있었다. 그것은 다윈의 착오, 오류의 산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열 살 때부터 새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내내 그 일을 하고 있는, 미국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인 리처드 프럼은 전혀 다른 말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성선택'도 '자연선택' 못지 않게 생명의 진화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명은 배우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생존에 별 유용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꾸준히 진화시켜 왔다고. 그런 자신의 주장을 평생동안 연구한 새들의 생태를 통해 충실히 증명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나온 '아름다움의 진화'라는 책이다.




 책은 모두 12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인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은 다윈이 진화를 이끌어가는 두 가지 거대한 법칙(2대 핵심 요소) 중의 하나로 여겼던 '성선택'이 어쩌다 찬밥 신세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힘과 동시에 '성선택'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런 상황을 창출한 이는 다윈과 거의 동시에 '자연선택'을 발견했고 다윈과 같이 논문을 쓰기도 했으며 다윈이 죽을 때까지 평생 서신을 교환한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였다. 다윈이 살아있을 때, 그의 성선택을 과학적 토론으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윌리스는 다윈이 죽자 성선택을 아주 과격하게 공격하여 수컷의 자기 과시가 중점이 되는 성적 장식물은 결국 적응적, 공리적 가치가 있을 때에만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성선택이란 결국 자연선택의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1970년대까지 진화생물학에서 잊힌 존재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처드 프럼은 이런 윌리스의 주장에 대해 책 전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점을 들어 비판한다.

 하나는 적응적 혹은 공리적 가치가 없는, 그렇게 임의적이고 오직 미학적인 것이라 할 지라도 진화에 있어 결코 불필요하다거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며 장식적인 것도 진화를 이끌어 온 거대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윌리스의 후예들은 여기에 대해 많이들 난감을 표했다. 대표적으로 아모츠 자하비가 그러하다. 그는 윌리스의 입장에 서서, 과시밖에 없는 성적 장식물들은 선택을 받고자 하는 배우자에게 이렇게나 쓸데 없는 것을 가지고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사실은 꽤나 강한 존재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선택 받는 것에 유리하기에 진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흔히 '신윌리스주의'라고도 부르는 이런 이들은 성적 장식물이 배우자에게 내가 생존에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정보로 여기고 그 때문에 진화했다고 판단하는 측으로써 여기엔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는 아름다움은 오직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자 짝짓기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주체는 어디까지나 수컷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전제가 틀렸다고 꼬집는다. 생명은 생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오로지 임의적이며 미학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진화시키는 데 주력해 왔으며 배우자 짝짓기는 암컷과 수컷 모두가 대등한 존재로 참여하여 벌이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5장, '백악관을 뒤흔든 오리의 페니스'는 이걸 충분히 입증한다.


 5장은 이 책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암컷 오리가 알을 낳은 뒤에 처한 상황이었다. 설마 오리의 세계에서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강간 행위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 오리는 수컷의 수가 암컷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늘 하나의 암컷을 두고 많은 수컷이 경쟁을 벌인다. 때문에 짝짓기를 하지 못하고 총각 귀신이 되는 수컷 오리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짝짓기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번식을 향한 욕망이 사그라들지는 않아서 수컷 오리들은 이미 짝짓기를 한 암컷 오리조차 강간해버린다고 한다. 때론 단 하나의 암컷 오리를 수컷 오리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윤간까지 감행한다고 하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신윌리스주의 입장에 따르자면 암컷 오리는 관계를 이끌어갈 능동적 힘이 없으므로 당하면 당하는 대로 있어야 할테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발기하여 사정할 수 있는(오리가 조류에서 아주 예외적인 존재로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수컷 아르헨티나푸른부리오리의 페니스는 무려 42cm라고 한다.) 수컷 오리가 잘 삽입하지 못하도록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구조의 질을 진화시켜 왔던 것이다. 어쩌면 수컷 오리의 급속 사정도 그러한 암컷 오리의 질 구조 때문에 진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리의 성생활은 배우자  짝짓기가 암컷과 수컷이 서로 대등한 참여자로써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여기서 다윈이 성선택을 말하며 주장했던 것이 또 하나 증명되었다. 바로 '성선택'은 공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공진화란 쉽게 말해 같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프럼은 이것을 무엇보다 새의 깃털을 통해 증명하는데, 새의 깃털이 가지는 화려한 색깔과 유려한 곡선미 그리고 문양의 정교한 배치등은 모두 암컷이 수컷의 진화에 발맞춰 스스로를 진화해 온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수컷이 온갖 정성을 다해 프러포즈하는 동안, 안목 있는 암컷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시종일관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마치 불감증 환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냉철한 짝짓기 결정이야말로 수백만 년 동안 수컷의 용모를 아름답게 빚어온 원동력이다. 수컷 청란이 수백 개의 황금색 공이 주렁주렁 달린 원뿔형 부채를 공중에서 빙빙 돌리며 흔드는 것도, 그녀의 까다로운 안목이 공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p. 102)


 이러한 성선택 공진화의 과정은 다양한 새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2장에서 7장에 걸쳐 전개된다. 이 책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새들의 생태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장이자 깃털의 진화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 수 있는 장이며 또한 성선택이 자연선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얼마나 잘 말해줄 수 있는지 체득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새들의 생태와 관련해서만 성선택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범위를 넓혀서 우리 인간과 문화까지 아우르는데, 그건 8장과 11장에 걸쳐 얘기된다. 특히 9장에 나오는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어서도 신윌리스주의의 남성중심시각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그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을 진화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한 부산물로 보거나(부산물 가설) 아니면 매력이 많고 유전적 자질이 좋은 남자와 수정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적응적 매커니즘으로 보아왔다.(흡입 가설) 그러나 부산물 가설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짙고 흡입 가설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상대방 남성의 매력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흡입 가설에 따른다면 남성은 여성의 오르가슴에 신경을 쓰고 거기에 대응하여 진화해 왔어야 했는데 '많은 사회에서 남성들은 최소한의 전희 만으로 섹스를 시작하여 여성의 쾌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의 절정'으로 직행'(p. 408)하는 게 현실이다. 2000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대졸 남성 중 42퍼센트가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남성의 좋은 유전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매커니즘이라는 지적엔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여성의 오르가슴 또한 독자적인 진화를 해왔을지 모른다며 바로 그 이유를 진정한 다윈주의의 핵심인 '미적 진화의 시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미적 진화는 자연선택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위치에만 머무른 반면, 진화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인식하고 생각하는지, 그 주관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에 모든 개체들을 주체로 만든다. 한 마디로 모두를 대등한 관계자로 참여시키기에 쉽게 우생학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자연선택의 위험 역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윤리적 측면과 사상적 측면에 더 할 나위 없는 이점 또한 가져다 주기에, 또한 허다한 새들의 생태가 과학적으로 증명하듯이,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성선택에 이제 많은 과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식으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지적 자극과 익히 알려진 것이라 해도 그것을 무턱대로 신봉해선 안되며  늘 나름의 숙고를 매개로 진지한 비판의 시선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름다움의 진화'는 정말 재밌고 흥미로 꽉 찼으며 머릿속 곳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독서였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까지 자연선택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그 곳에 성선택을 통해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책이기에 무엇보다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 오직 지적인 포만감을 위해 읽는다고 해도 새들의 배우자 짝짓기 과정이나 성선택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더욱 잘 해명되는 인간의 성생활이나 문화 등, 읽을 거리가 정말 차고도 넘치기에 충분히 권할만하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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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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