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5.20
몽유병자들
- 글쓴이
- 크리스토퍼 클라크 저
책과함께
“이런 의미에서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
유럽이 세계대전의 참화에 접어들어가는 과정을 냉철하게 밝혀 나간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 문장 하나로 그가 제1차 세계대전의 국가들, 그리고 그 나라의 주역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최초의 세계대전(사실 이런 표현이 어폐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으로 나아가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전쟁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국가의 결정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여겼다(모든 국가가 자신들에게는 ‘방어적’인
의도가, 상대방 국가에게는 ‘공격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몰랐고, 아니 굳이 외면하였다. 그들은 몽유병자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악인(惡人), 내지는 악(惡)의 제국을
지목할 수 있는 데 반해(물론 그런 시각에 반기를 드는 역사가도 없지는 않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절대적인 악인과 악의 제국을 지목하기가 곤란하다.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과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갈등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배웠고, 아마도 그게 맞는 해석이겠지만, 그렇다면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말하자면 삼국연합의 국가들, 영국,
프랑스 등)이 더 큰 문제였는지,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말하자면 삼국동맹의 국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이
범죄 국가였는지(물론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패한 국가가 덤터기를 쓰게 될 터이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다. 아니면 제1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된 세르비아라고 하기도 그렇다.
저자는 분명한 책임을 지어야 할 국가와 인물을 명시하지 않고, 제1차 세계대전의 구렁텅이로 유럽의 국가들이 빠져들어가는 장면들을 구성하고 있다.
첫 장면은 1903년 6월 벌어진 일련이 장교들에
의한 세르비아 국왕 살해 사건이다. 이 국왕 살해 사건은 세르비아 내의 권력 다툼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사라예보에서의 가르릴로 프린치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저자는 이 사건 사이이 (조금은 지리하게) 1900년대 초반의 유럽 열강들, 그리고 기타 국가들의 상황에 대해서, 그들 국가들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보기에 바로 이 복잡한 국제 관계와 개인들의 성격, 야심, 머뭇거림
등등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원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발칸 국가들(아직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지역들까지 포함해서)까지 얽히고 설킨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각국의
정부와 정책 결정자들은 반목하면서 협력하고, 의심하면서 협정을 맺었다.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시적인 데탕트를 맞이하였고, 그 데탕트는 착시 현상까지
가져오게 된다. 국제 문제를 전쟁을 통해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 내지는 반대로 이 교착 상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전쟁이 필요하다는 호전적인 주장들. 온갖 입장과 주장들이 난무하는 상황이었고, 상황을 완전히 틀어쥐고
이끌어가는 이도 별로 없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사라예보의 사건이 일어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세르비아 정부의 관련성을 인지하였고, 따라서 그에 대한
상응 조치를 요구한다. 최후 통첩이었다. 그것은 독일을 배후에
둔 공세였다. 그러나 그 최후 통첩은 세르비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혹은
이해 관계가 절실한) 러시아를 자극하고,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프랑스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어 영국까지 전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국지적인 전쟁, 즉 부분동원으로도 충분했다고 보였지만,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오해하고, 그것을 통해서 상호작용에만 몰두하며 전면 전쟁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그들의
연속된 결정들이 나아가서 도달한 결론이었다. 즉, 전쟁은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려 하지 않았거나, 피할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 책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까지만 쓰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후의
일은 다들 알고 있는 바와 같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며, 전쟁이 일어나고는 모든 게 끝났다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의 광고에는 이 20세기 초반의 상황과 21세기 지금의 상황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사실 그것은 의미 없다. 전쟁의 발발은 모두가 유사할 수도 있으며, 모두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전쟁이라는 귀결이 가져올 파괴력(특히 지금은 더욱
그렇다)을 생각하면 그 유사성을 강조할 수 있으며, 그 특수함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되는 모든 이가 지혜를 발휘하여 전쟁을 막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20세기 초반, 몽유병자들이 일으킨 전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적용시켜 그것을 회피하고자 함이 아니라 전쟁이란 그만큼 끔찍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누구 하나라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그
노력이 그 국가에서 채택되었다면 첫 세계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존재한 전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은 전쟁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