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서사시를 쓴 두 위대한 시인으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거명되곤 했다. 이를테면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만들어준 것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라고 주장한다(p.274).

이 책에는 헤시오도스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신들의 계보, 일과 날, 헤라클레스의 방패, 여인들 목록 등 네 편의 서사시가 모두 실려 있다. 그중 헤라클레스의 방패와 여인들 목록은 헤시오도스의 작품이 아니라는데 학계의 의견이 모아진다고 한다. 

  글의 분량으로는 네 편 모두 매우 짧아서 그냥 본문만 읽는다면 반나절 남짓이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읽으면 글자를 읽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길게 붙은 주석까지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한다. 힘들지만 다른 그리스 신화집― 에디스 해밀턴의 그리스 신화 등 ―을 읽으면서 불투명하게 여겨졌던 부분들이 원전 읽기를 통해 해소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신들의 계보]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신들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이야기한다. 무사 여신들을 찬미하며 여신들에게 청하여 이 모든 것들을 노래하게 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풀어나간다. 맨 처음 생긴 것은 카오스― 우주가 들어갈 공간 ―이고 뒤따라 대지인 가이아와 우주의 원초적 생식력인 에로스가 나타난다. 하늘인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는데 이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는 확연히 다른 구성이다. 결국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은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서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을 우선시하고 인간의 생명을 이어지게 하는 생식을 중시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우라노스가 아들인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하고 물러나는 얘기나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패하여 최고 신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얘기는 다른 책을 통해서 접했던 내용보다 상세해서 그리스 신화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제우스가 최고 신이 된 이후에 나오는 다른 신의 탄생과 인간들의 탄생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자신들의 존재 의의에 대해 당시― 기원전 700년 경 또는 그 이전 ― 그리스인들이 신화의 형식으로 이해한 바들이다. 음유시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그 내용이 전달되면서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내용으로 설명하는 바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다른 신화에서도 나타나는 점들이다.

  [일과 날]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생활과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 올바른 생활 태도를 위한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실제 힘들게 농사일을 했던 헤시오도스의 생활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들었던 얘기를 옮기는 형식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전달하는 특이점이 있다. 형과의 소송 건이 주요한 주제인데 인간에 대해 다소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판도라가 이 작품에서 처음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것처럼 희망의 가치를 노래한다기보다 희망의 비실현성을 거론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호메로스건 헤시오도스건 텍스트만 읽어서는 작품의 참맛을 느끼기 쉽지 않다(고 본다.)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해설서나 주석서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호메로스는 작품 번역뿐 아니라 여러 해설서가 번역본으로든 한국인이 쓴 것으로든 몇 가지 나와 있지만 헤시오도스는 두 종류의 작품 번역만 보인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주석을 비롯한 부록― 그리스 신화의 주요 신들, 주요 신들과 영웅들의 가계도, 헤시오도스 작품의 이해―은 헤시오도스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중요한 설명 자료가 된다. 특히 30개에 달하는 도표로 보여주는 가계도는 그리스 신화를 읽는다면 두고두고 활용할 자료이고 헤시오도스 작품의 이해는 작품의 사회 배경과 사상 구조를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한국어로 된 헤시오도스를 읽는다면 이 책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부분에도 있다. 

이제라도 헤시오도스의 작품들을 다 읽게 되어서 행복하다. 그리스 신화, 비극을 이해하는데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기쁨을 느낀다.

P.S.

여성의 가치를 낮추어보는 시각이 곳곳에 반영되어있으므로 걸러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