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
  1.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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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00%페이백][대여] 꽃을 사는 여자들
글쓴이
바네사 몽포르 저
북레시피
평균
별점7.6 (128)
게스

세르반테스가 묻혀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마드리드의 한 유서깊은 성당 옆 무덤 자리에 꽃집이 있다. 천사의 정원이라고 불리우는 이 꽃집에 들락거리며 꽃을 사는 여자들은 꽃집 주인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서로를 알아간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자들은 어디서고 쉽게 어울린다. 대개 나이나 학력, 출신, 또는 지적 경제적 경계를 허물고 언제 어디서건 누구와도 쉽게 일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 예를 들어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과 함께 주거공간을 함께해야 하는 다인용 병실에서 하루만 있다보면 별의 별 이야기들을 다 나누는 것을 알 수 있다. 꽃집에 드나들며 꽃집 주인과 친해지고, 꽃을 매개로 일상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다섯 명의 여자들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모두 각자 개성있는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자신의 인생이 있고 꽃을 사는 혹은 꽃집을 들락거리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한 주인공에게 편중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조연으로 밀어내지 않은 채, 조화로운 앙상블 연주처럼 이토록 다른 개개인의 삶을 모두 소중하게 골고루 비춘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나이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시기가 있을까. 물론 젊었을 수록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펼쳐져 있지만 마흔이 넘었다고 해서 인생의 마디들을 이룰 주요 결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가령 사랑을 말하자면 식어버린 사랑 대신 몸과 마음을 축내는 무거운 책임감만이 남은 인생의 전부라고 할 때,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은 행동과 정신을 지배하는 도덕적 관념과 보수적 행동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좋은 엄마, 고분고분한 며느리, 현명한 아내, 그리고 성공적인 커리어 이 모두를 충족시켜야 하는, 얼핏 보면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어 보이는 카산드라에게 꽃말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하는 새로운 사랑은 모두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함에 대한 추구는 슈퍼우먼 컴플렉스 덫에 걸려있다는 걸 자신만 모른다. 여자들은 카산드라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꽃말을 통해 확인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그녀의 생이 새로운 마디를 맞기를 바란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둘에게는 과거에 사랑했던 이유만으로 가정을 꾸려온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배우자들이 있다. 카산드라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라고 생각한다. 반면 꽃을 주는 남자(그녀와 썸타는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허약하고,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버릴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꽃을 사는 여자들은 둘에게 조언한다. 남을 위해, 남 인생의 조연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유럽의회 의원인 빅토리아 역시 꽃을 산다. 그녀는 꽃을 한아름 사서 근사한 말을 써넣은 카드를 동봉해 자신의 사무실로 보낸다. 빅토리아는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은 성공한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완벽함에 훼손을 입히고 사내에서 자신을 향해 쑥덕거림의 이유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보낸 꽃을 남친이 보낸 꽃으로 포장해서 사무실에서 받는 장면을 전시한다.이 꽃은 서글프게도 자신이 갖지 못한 사랑을, 자신이 갖지 못한 애인에 대한 거짓 과시의 언어다.  철저하게 일에만 몰두하는 그녀에게도 비밀의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불륜이라는 도덕적 잣대를 비껴가더라도 뭔가 결핍이 있다. 남자에게 카산드라는 사랑일까? 외도일까? 혹은 카산드라에게 남자는 사랑일까 외도일까.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목격한 카산드라는 남자의 아내에게 '당신 남편이 이걸 우리지베 남기고 갔어요' 라는 쪽지와 함께 다 쓴 콘돔을 보내겠다고 으르렁 거리지만 끝내 보내지 못한다. 다섯 명의 스토리는 각자 반전 비슷한 드라마틱한 장면을 가지는데, 빅토리아의 반전이 가장 드라마틱하다. 그녀는 어떤 일을 계기로 서서히 남자에 대한 사랑이 식고, 진짜 사랑이라 믿어지는 순수한 사랑을 발견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큰 반전이다. 


마리나는 유일하게 1인칭으로 서술되는 사람이고, 그래서 가장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낸 사람이다. 마리나가 꽃집에서 일하게 된 건 꽃집 주인 올리비아의 배려에서였는데, 그녀는 그녀 자신이 모든 걸 의지하던 남편이 죽고 이 동네로 이사하면서, 그녀의 우울한 모습이 눈에 띄어서 굳이 사람이 더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녀를 채용했던 것이다. 마리나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요트 항해를 하던 남편의 모습을 회상하고 홀로서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카산드라나 빅토리아와는 달리, 그녀는 거의 나이 많은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녀는 그동안 남편과의 삶을 회상하며 그의 유골을 뿌리러 홀로 지중해를 건너는 요트 항해에 나선다. 꽃집 여자들의 후원과 응원으로 나선 여행이지만 처음으로 홀로 요트를 몰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지만, 남편이 남긴 또 하나의 진실과 마주치며 절규한다. 마리나의 에피소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의무 때문에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의무를 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밖에도 왜곡되게 주입된 순결과 순종 관념 때문에 남자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도 택시 운전사로 근근히 생활비를 벌며 그림을 그리는 오로라, 자유분방하게 이사람 저사람 그 누구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를 가지는 칼라의 스토리 역시 그들의 기울어진 삶을 인식하게 하고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는데 꽃집 여자들과의 수다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수다는 수다일 뿐, 그들의 애정어린 조언보다는, 스스로 부딪쳐서 깨달아서 내리는 결정들이 삶의 굵직한 장들을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조율하고 조언해온 꽃집 주인 올리비아가 자신의 숨겨왔던 비밀스러운 이야기 역시 소설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자들이 나누는 수다라고 해서 다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궂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꺼내들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딱히 여자에게만 적용할 필요는 없을 일반적인 삶의 주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게 모르게 강요된 희생의 미덕을 주입받아 때로 필요없을 지도 모를 책임감을 끌어안고 달리 흘러가게 했을 지도 모를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버렸을 지도 모른다. 책임과 의무를 가치관으로 착각하고 불행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생 마흔. 다 산 것 같지만, 앞으로 더 많은 생이 있고, 현재와 연결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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