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중재리뷰(에세이/한국문화/한국사)

iseeman
- 작성일
- 2019.7.21
이별의 푸가
- 글쓴이
- 김진영 저
한겨레출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의미가 매우 궁금했다. ‘푸가(fuga)’가 음악 용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음악을 지칭하는 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푸가란 음악의 작곡 방식 가운데 하나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응답과 대위를 이루며 곡 전체에 걸쳐 표현되는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라 는 풀이가 적혀있었다. 특히 서양 음악사에서 푸가 형식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의 작품에서 그 형식과 표현 효과가 최고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도 한다. 음악, 특히 클래식의 용어에 대해서 문외한과 다름이 없다 보니까. 사전의 풀이를 보더라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식인지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음악의 전체적인 흐름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이 책에 <이별의 푸가>라는 제목을 붙인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글들을 모아 엮은 유고(遺稿)라고 할 수 있다. 표지에는 ‘이별은 왜 왔을까. 우리는 왜 헤어져야 했을까.’라는 내용의 글이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이별이라는 주제로 대중가요와 소설, 혹은 다양한 책들에 나오는 구절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생전에 이 글들을 정리하면서 적었을 짤막한 다섯 문장으로 된 아래의 글이 서문을 대신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어린 시절 나만의 작은 골방이 있었다.
나는 자주 그 골방에서 슬픈 동요를 불렀다.
그러면 그리워서 나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 눈물이 행복했다.
이 단상들은 모두가 그 골방에서 태어났다.’(책의 앞머리에서)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짧은 생각을 정리한 글이라는 의미의 ‘단상(斷想)’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실제로도 아주 짧은 내용들이 저자가 제시한 특정의 소주제 아래 나열되어 있고, 그 내용은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문헌에 등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제시하기도 하였다. 어떤 것들은 누군가의 글에 저자의 생각이나 감상이 덧붙여져 있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서,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수첩에 적거나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덧붙여 기록하기도 한다. 언젠가 적어둔 메모를 읽으면서 그 의미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왜 이런 글을 적었는가를 까먹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들은 내용이 이해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별이며, 그러한 주제를 통해 소환되는 기억을 저자는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정리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까마득한 시절, 이별의 경험으로 크게 아파했던 나의 과거도 언뜻언뜻 떠오르기도 했다.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 동봉한 짧은 소개글을 통해서, 이 책의 일부 원고들이 <현대시학>이란 잡지에 연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연재를 그만 둔 뒤에도, 저자는 책을 읽거나 생각하면서 이별이라는 주제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리한 내용들에 <이별의 푸가>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의 사후에 이 책이 세상에 선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 짐작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풍부한 감수성이 진하게 느껴졌으며, 독서 범위가 무척이나 넓고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는 습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의 글들에는 책속에 제시된 짤막한 단상들의 출처가 제시되어 있어서, 어떤 내용들은 인용된 원전의 내용을 통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생각들은 온전히 저자만의 인식일 터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독자들마다 다를 수 있다고 하겠다.
어쩌면 사랑은 이별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순간에는 그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느끼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들은 대개는 이별 후의 상황을 그린 경우가 일반적이다. 저자는 ‘호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두 가지의 이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두 가지의 이별을 저자는 ‘사랑이 다 지나간 뒤의 이별’과 ‘사랑이 다 이뤄지기 전에 찾아드는 이별’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이별은 모두가 후자의 이별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다 지나간 뒤의 이별’이란 어쩌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이며, ‘다 이뤄지기 전에 찾아드는 이별’만이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 더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지면서, 각자에게 아득한 추억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별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이 고통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빌어본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5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