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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공
  1. 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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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글쓴이
히가시노 게이고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평균
별점9.2 (118)
뻑공

10년쯤 전에 읽었을 때도 가슴에 뭔가 단단한 게 박힌 것처럼 느껴지더니, 그 사이에 내용을 다 잊고 지내면서 다시 읽었어도 그때의 느낌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가해자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들이 받아야 하는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어떤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그렇게 용서를 구한다고 피해자나 유족의 마음이 편해질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쩌면 잊고 싶은 기억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용서를 구한다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과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마음에 용서를 구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과를 받는 사람은?

 

매달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를 받는 나오키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살인강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형이 한 달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다. 형은 살인자인 자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도 못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일자리도 구하기가 어려운 동생의 처지를 생각하며 꾸준히 안부를 묻는다. 처음에는 나오키도 그런 형의 편지가 고마웠다. 자기 때문에 강도짓을 시도했던 형의 마음을 알기에, 형을 이해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현실에서 겪는 살인자 가족의 삶을 짊어지기에 나오키는 너무 힘들었다.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에 다니는 것도 불편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는 인사에 불이익도 받았다. 살던 동네에서는 주민들의 은근한 따돌림도 당해야 했다. 언젠가부터 형의 존재를 숨겼다. 마치 처음부터 형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형의 존재를 영원히 숨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번번이 나오키의 일상에 등장하는 형의 존재였다.

 

살인자를 가족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당연한가? 소설은 계속 나오키가 당하는 차별을 보여준다. 악의는 없지만, 살인자의 가족과 관계 맺는 것을 피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면서 계속 속죄의 의미와 가해자 가족이 받는 차별에 관한 물음을 놓치지 않는다. 형량을 다 채웠다고 죗값을 치른 건가? 피해자의 유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계속 보낸다고, 혹은 가해자의 가족이 피해자를 찾아가 사죄한다고 그게 속죄가 되는가? 알 수 없다. 어느 쪽에 서 있어도 물음표만 계속될 뿐이다. 가해자의 마음과 피해자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찾고 싶어지게 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와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별은 정당한가 싶기도 하지만, 어느 한 가지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는 어려울 듯하다.

 

소설은 살인이라는 아주 큰 범죄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다툼과 사과를 떠올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 그 미안하다는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사과한다는 건 사과를 받는 이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과하는 사람의 마음이 좀 편해지고자 하는 말은 아닐까 하는. 내가 상대방에게 사과했으니 나의 잘못도 어느 정도는 용서하겠지 하는 마음 말이다.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받은 상처를 미안하다는 말로 다 치유할 수 있을까? 그 사과의 말로 이렇게 상처받았던 일이 없던 일로 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곤경은 츠요시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의 일부다. 범죄자는 자기 가족의 사회성까지도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차별은 필요한 것이다. 나오키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자기를 마땅치 않게 보는 것은 그 사람들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며 운명을 저주했다. (368페이지)

 

누군가는 기억하면서 속죄하고 싶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자의 가족과 피해자의 유족. 누구도 기억에서 지우거나 편해질 수 없는 사건은 일어났다. 나오키의 회사 사장의 말이 생각난다. 범죄를 저지를 때는 가해자 가족의 사회적 자살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고. 내가 저지른 범죄가 나만의 죄는 아니라는 거다. 내가 저지른 범죄로 내 가족,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가해자와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잠깐만요. 답을 가르쳐주십시오.”

“답 같은 건 없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건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야. 자네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423페이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감동적이고 뭉클한 이야기다.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파고들어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아마도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일지 모른다. 속죄의 범위,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의 인생,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 같은, 그 어려운 관계에서 또다시 이어지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살인 그 후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볼 기회를 만들어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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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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