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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작성일
- 2019.8.10
라멘이 과학이라면
- 글쓴이
- 가와구치 도모카즈 저
부키
라면이라 하는 건 참으로 이상하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라면을 먹으면 나도 당연히 라면을 먹고 싶다. 이거야 어떤 음식이든 마찬가지일 거다. 강렬한 라면 냄새를 맡고도 항복을 선언 않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근데 텔레비전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등장해도 그러하다. 특히 야밤에 후루룩 소리와 함께 면발을 흡입하는 사람의 모습을 접하고 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허벅지를 꼬집어야 할 정도로 라면 생각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왜일까. 우린 왜 그토록 라면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걸까.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한 끼 식사 혹은 간식으로 각광받는 라면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꽤 어린 시절에도 라면은 존재했다. 라면이 순 우리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막연히 일본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하긴 하는데, 오래 전 경험한 일본식 라멘은 우리의 라면과는 사뭇 달랐다. 그땐 이유가 무엇이었던지, 면과 국물이 따로 논다는 생각이 강했다. 건강에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맛이 없었다. 라면과 라멘이 같은 것이건 다른 것이건, 이 요상한 음식에 대해서는 알고픈 마음이 굴뚝 같다. 어쩌다가 우린 라면에 열광하게 됐는지, 호기심 해결을 위해 <라멘이 과학이라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골라 읽었다.
글은 때로 영상보다 더욱 선명하다. 하지만 글로 접한 라면의 맛은 대체 어떻다는 건지 상상조차 버거웠다. 무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맛볼 수 있었다는 라멘은 엄청나게 짠맛을 저자에게 선사한 모양이었다. ‘영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면서까지 기다려감서 먹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짠맛에 열광했던가? 라면의 매력은 ‘감칠맛’이라고 하던데, 책에서 말하는 감칠맛은 마치 ‘아무맛도 아닌 맛’에 버금가는 듯했다. 다만, 씹으면 씹을수록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 오로지 염분만 가득한 무언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건강을 생각하는 건 국적불문. 어떻게 하면 염분을 줄이면서도 매력 있는 맛을 자랑하는 라멘을 만들 수 있는지를 두고 일본인들 또한 한국인 못지않게 고심을 했던 듯했다.
술을 마신 후 라면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는 이야기가 일본인이 쓴 책에서도 등장할 줄은 몰랐다. 사실 난 소량이긴 하나 아침이면 늘 밥을 먹어버릇했다. 나로서는 아침부터 라면을 먹는 일이 상당히 고통스럽다. 술을 마셨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지라 다른 이들의 해장 라면 예찬 앞에서는 고개를 젓기 바빴다. 술을 마시면 저혈당 상태가 되는지라 당이 필요해 라면이 당길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는 출발했다. 라면은 탄수화물 보충에 탁월하다. 게다가 음주 후 사람들이 이끌리곤 하는 진한 맛을 지니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술을 마신 후 라면은 붓기에 딱이다. 책은 이온 음료를 권한다. 왠지 음료에서 술맛이 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을 난 택하련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미지지근한 라면이 있다? 냉짬뽕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뜨겁지 않은 라면이라니 의아했다. 미지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츠케멘이라니. 누가 끓여도 되는 게 라면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 음식 까탈스러웠다. 건강을 부쩍 생각하는 흐름을 좇아 라면에 들었다는 화학조미료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인스턴트 음식이니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알아서 피하지 싶다. 하지만 라면 아닌 다른 음식이 건강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다수가 화학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마지막에 화학조미료를 조금 더해 맛을 조정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제대로 된 육수를 끓여내 라면을 만든다면 소량의 화학조미료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라면과 관련 있는 의성어 부분은 읽으면서 한글이 참 생동감 넘치는 언어라는 뜬금없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1960년대 나온 만화 ‘오바케의 Q타로’에는 등장인물이 라면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라면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효과음 ‘즈룻 즈루 즈룻’이 등장한단다. 냠냠이나 쩝쩝, 혹은 후르륵도 아닌 즈룻이라니. 문화의 차이인지, 그로부터 라면 먹는 장면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이와 같은 의성어가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이 마냥 놀라웠다.
다행이도 지금은 라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식사 때도 아닌데 허기가 지면 어쩌지 걱정을 꽤나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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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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