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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주
  1. 인연 닿은 책-일.고.십(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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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징비록
글쓴이
류성룡 저
서해문집
평균
별점8.8 (157)
박공주

 

책 초반부를 읽는데 예전 코미디가 생각났다. 변방의 북소리라고. 심형래씨가 나오던 코너인데 작전도 어설프고 병사들도 어설프고, 작전 전달도 제대로 못해 웃음이 절로 나왔던 코미디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징비록> 속 상황도 그 코미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군이 쳐들어 왔다. 왜군이 쳐들어 온 사실을 장수에게 고하니 분위기 흐트린다고 고한 이를 죽인다. 그러다 적이 눈앞에 오니 첩을 피신시키고 자기도 도망간다. 그래서 다른 이를 내보내니 손도 못쓰고 죽는다. 변방의 북소리는 코미디라 맘껏 웃기라도 하지, 이건 나라의 명운과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이야기에다, 실제 상황이니 웃지도 못하고 가슴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선조가 피난을 요동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 패하기만 했으니 피난을 갈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것일텐데. 이미 그런 결과를 아는데도 나도 모르게 여기서는 이겨야 되는 거 아니야?하는 답답한 마음이 마구 솟았다. 그 역사를 살아낸 이의 눈으로 그 사건과 시대를 서술했기에 더 실감나고 더 속상하게 여겨졌다. 역사를 정리한 책도 물론이거니와, 이런 책을 좀 더 찾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일단..마음은 먹음..)

 

 

 

왕의 무능함과 관료들의 탁상공론, 제 살길만 챙기기, 반대파 숙청하기, 귀닫고 눈감기, 상벌에만 관심 두기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전쟁이 없는 시기일지언정, 적어도 자력으로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했어야 하는데, 아니면 적어도 충언들에 귀를 기울였다면, 조금이라도 피해가 적었을텐데 안타깝기만 했다. 그 원통함을 류성룡이 <징비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같은 실패를 겪지 말라고 당부한다.

 

1. 류성룡과 징비록

 

 

[유성룡과 징비록] 中

 

1574년,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늘 그렇듯이 유성룡 또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살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생략)

임진왜란 발발시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던 그는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하였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하였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다시 의주에 이르러서는 평안도 도체찰사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파견되어 오자 그와 함께 평양성을 수복하였다. (생략)

 

이후 류성룡은 영의정에 다시 복직하여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비강황와 인재 배양에 힘썼으나 정유재란 이듬해에 북인들의 탄핵으로 관직을 삭탈당한다. 고향으로 가 저술에 몰두하고, 복관되어 조정에서 불렀으나 일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글 중 <징비록>은 역사적,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문장으로 꼽히고 있으며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징비록의 징비는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리뷰에서 이를 언급한 이유는, 그의 일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의 분위기가 읽혔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고,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 급급하여 벼슬을 줬다 뺐었다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금이라고 딱히 다른 것 같지 않아 더 답답한 것도 있고 말이다.

 

선조가 만약, 임진왜란 후에 제대로 나라를 재건하려고만 했더라도, 후대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류성룡이 크게 깨닫고 군을 정비하고 인재를 키우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라를 이끌어감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고 뜻을 모았다면 어땠을까 답답하기 그지없다.

 

 

2. 이순신

 

임진왜란은 이순신이 다했구나 싶을 정도의 뛰어난 인물을 못잡아 먹어 안달인 말만 하는 이들은 분노를 일으킨다.

p. 187

 

이순신이 원균을 구원해 준 후로 둘 사이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얼마 후 공을 따지게 되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성품이 음흉하고 간사한 원균은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이순신을 모함했다.

(생략)

가토 기요마사가 다시 공격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요시라는 몰래 김응서를 찾아왔다. (생략)

김응서는 이 내용을 조정에 알렸다. 조정에서도 이 내용을 믿었는데, 특히 해평군 윤근수는 기회가 왔다며 계속 임금께 보고드리고 이순신에게도 빨리 전진할 것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계략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주저하고 있었다. 

 

주저했다는 이유로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잡아들이고 원균을 통제사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임금이 그래도 의문이 있어 남이신을 파견하니 병사와 백성들이 모두 나와 이순신을 옹호한다. 하지만 이를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는다. 이순신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고 하여 결국 이순신은 옥에 갇힌다. 판중추부사 정탁의 충언 덕에 그나마 사형은 면하는 이순신. 그리고 이순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원균. 왜적의 기습에 대패한다. 심지어 자기 수하들만 챙겨 도망간다. 결국 다시 이순신을 삼도 순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싸우라 하지만, 배도 10여척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기에 군을 정비하고 적의 구원병을 크게 물리쳤으나 총이 가슴을 관통하여 숨을 거둔다. "지금 싸움이 급한 상태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류승룡이 본 이순신은 이러했다.

 

p.215

 

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후대의 평가가 아닌 역사 속 인물이 다른 역사 속 인물을 평하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흔히 말하는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숨쉬는 것 같다라는 표현. 그게 딱 맞는 것 같다. 그들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갈등하고 잘못된 선택도 할 수 있지만, 그 잘못을 바로 잡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일을 위해 나아간 이는 후대에 존경받지만, 아닌 이들은 지탄받는다. 눈 앞의 이익보다 멀리보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3. 우리의 지금은?

 

그 험한 시기를 이겨내고 앞일과 나라를 생각하던 장수가 또 하루아침에 파직된다.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인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분노에 차서 자신의 후일을 도모하기 보다, 왜 그렇게 잘못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다시 살펴보고, 후손들은 그러지말라고 교훈을 남겨야겠다고 글을 써 내려간 류성룡의 의지.

 

그 의지를 후손인 우리는 얼마나 알고, 교훈 삼아 행하고 있는 것일까? 징비록을 읽으면 현재의 상황과 겹쳐진다는 일.고.십. 멤버들의 한숨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빠른 성장으로 IT강국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식민지였던 나라가 이제 어려운 나라들을 도울만큼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징비록에서 전하고 있듯이 그렇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삶이나 세계 정세도 여유로운지 살필 때라 여겨진다.

 

p.35

 

당시 나라는 평화로웠다. 조정과 백성 모두가 편안했던 까닭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나와 동년배인 전 전적 이로도 내게 글을 보내왔다.

'이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다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

 

p.43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그렇지만 걱정이 된 나는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라에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면 병사들은 모두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때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 병사들도 강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러나 신립은 내말은 무시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p.232

 

무릇 나라에서는 평소에 훌륭한 장수를 선발해 두었다가 유사시에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을 선발할 때에도 정확해야 하고 그들을 활용할 때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생략)

자기가 기른 군사는 쓰지 못하고, 써여 할 군사는 기르지도 않았으니 병사들끼리도 몰라볼 정도였다. 이야말로 병법에서 절대 금하는 것이니, 어찌 앞사람의 잘못을 뒷사람이 고칠 줄 모르고 그대로 답습하여 일을 망친단 말인가!

 

이러고서도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요행에 기대는 것 뿐이다.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참으로 위험하구나!

 

마지막 글이 무섭게 다가온다. 앞사람의 잘못을 그대로 행하면서 무사하기를 바라는 요행은 안 될 일이다. 세계 정세도 지금 만만치 않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똑똑히 기억하라고 류성룡은 <징비록>을 남겼다.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해야할 시기이다. 일.고.십 질문에 대한 답에도 썼지만, 우리만의 것을 제대로 갖춰서 또다시 다른 나라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힘을 길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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