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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 작성일
- 2019.9.11
걸리버여행기
- 글쓴이
- 조나단 스위프트 저
현대지성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이미 영화나 만화로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꿈과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는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만난 영화나 동화는 주로 소인국 이야기 위주였고, 내용이 길어봤자 거인국에서의 이야기 였는데, 1726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단순히 소인국에서의 모험담인 릴리펏 여행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인의 나라인 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인 라퓨타, 말의 나라 휴이넘(Houyhnhnm)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릴리펏(소인국) 여행기
주인공 걸리버는 베이츠 선생님 밑에서 2년 7개월간 의학을 공부해서 선상의사가 되었고, 몇 년 동안 배를 타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 했으며 부두 가까운 지역에 의원을 개업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앤틸로프 호를 타고 항해를 하던 중, 배가 좌초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6명의 선원들과 보트를 타고 간신히 탈출했는데 그 배가 뒤집혀서 모두 실종되고 혼자만 살아남는다. 운명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긴 그는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대로 잠을 잤다. 몇 시간 자고 일어나려는데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비록 몸은 15cm로 작았으나 창의적인 재주를 가진 국민들과 신중하면서도 정확한 경제를 파악하는 위대한 군주를 만났다. 그런 군주와 국민들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사는 것 같았는데, 그들도 나름 힘든 점이 있었다. 하나는 본국에 있는 난폭당 파당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의 가장 강력한 적국이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다.
여기서 난폭한 파당은 두 개의 서로 싸우는 파당으로 실제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을 가리킨다. 두 당의 싸움 외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과, 사소한 이유로 전쟁하는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앤 여왕이 작가인 스위프트의 논문을 종교에 적대적이라 하여 사제의 보직을 받는 것에 반대했고, 스위프트는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기에 소인국의 왕후가 걸리버에 대해서 괘씸하게 여기는 것으로 빗대어 적기도 했다. 어디든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에서는 우호적인 사람들과 적대적인 사람들이 공존한다. 걸리버도 의도치 않게 장군과의 대립으로 탄핵이 되었고, 이웃나라로 탈출했다. 이웃나라에서는 큰 대접을 받지 못했고 결국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보트 한 척으로 소인국을 떠나고, 무사히 귀국을 했다. 거기서 준 선물로 걸리버는 재산이 풍족하게 되었다.
2부.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떠난 여행에서 거인들을 만났다. 농장에 도착한 걸리버는 농부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장터에서 공연을 하여 농부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 돈을 많이 벌수록 걸리버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고, 결국 농부는 죽을 것 같은 걸리버를 궁에 팔아버린다. 걸리버는 친절한 왕비와 생활하게 되었고, 거기서 자신을 괴롭히는 난쟁이와 파리, 벌, 개, 원숭이와 싸우면서 거인국에서의 삶에 적응해나간다.
거인국에서는 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걸리버는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거인국 사람들에게 맞춰가면서 나름대로 생활을 잘한다. 거인국의 왕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 상당히 배타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정치에 대해서 무지하며 학문은 아주 불완전하고 제한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걸리버는 거인국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다. 나름 훌륭한 대접을 받으면서 잘 보냈다. 다만 걸리버는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거인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한동안 자신이 거인이고 가족은 피그미 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
3부. 라퓨타(날아다니는 섬),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여행기
걸리버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로빈슨 선장의 배로 다시 항해를 떠난다. 항해 열흘째 되는 날 해적선에 붙잡혔고 특히 한 네덜란드인은 이유없이 걸리버에게 적개심을 보였다. 그래서 결국 해적들은 걸리버를 죽이는 대신 노와 돛을 가진 카누를 타고 정처없이 바다를 표류하도록 벌을 줬고 이 섬, 저 섬 떠돌다가 어느 섬에 도착을 했다. 그 섬에서 공중에 떠 있는 섬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라퓨타' 라는 섬인데 천연 자석으로 어느 방향이든 이동이 가능하고, 주민들은 대개 지식층으로 수학, 음악, 천문학 등에는 관심이 있으나 그 외에 분야는 전혀 무관심했다. 걸리버는 라퓨타 섬 주민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겉돌다가 결국 작별 인사를 하고 공중의 섬에서 내려와 왕이 통치하는 땅, 수도 발니바비에서 머문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천공의 섬 라퓨타'만 들어봤는데, 걸리버 여행기에서 시작됐을 줄이야. 실제 검색해보니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스위프트는 친구였던 애터버리 주교가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사건을 똥에 빗대어 풍자하기도 했다. 럭낵 섬을 거쳐 글럽덥드립으로 짧은 여행을 한 후 일본에 도착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간다. 럭낵의 국왕을 만나는 자리에서 궁중의 고유 경례방식인 '바닥을 핥기' 행사는 색다르고 충격적이었다.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앞으로 기어가면서 바닥을 핥는 형식인데, 만일 국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입 안에 들어온 먼지를 뱉거나 입을 닦아내는 행위는 사형감이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4부. 후이늠국(말의 나라)
5개월 정도 가족들과 보낸 걸리버는 선상 의사가 아니라 선장으로 항해를 떠난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서 말이다. 선원을 보충하려다 악당을 잘못 고용해서 자신은 어느 섬에 버려지게 되었다. 거기서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의 '야후'라는 야만인들을 만나고 난 후에 그 곳을 지배하는 말들을 보게 된다. 후이늠국은 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고, 그들의 말을 배우며 걸리버는 3년을 살게 된다. 후이늠국의 주인에게 유럽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하는 원인과 앤 여왕이 지배하는 영국의 헌법과 국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4년 마다 나라를 대표하는 회의를 하는데 회의의 주제는 단 하나, 자연이 창조한 동물 중 가장 추악하고 해가 되고 반항적이고 악의적인 '야후'를 세상에서 몰살하는가의 여부다. 문제는 말들이 걸리버를 야후로 생각하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 걸리버는 살기 위해 6주만에 카누를 만들어 섬을 떠난다. 걸리버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후이늠국에서의 3년 간의 생활은 걸리버에게 야후=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처럼 인간을 싫어하게 되어서 걸리버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가족 조차도 거부하며 말을 몇 마리 사서 그들과 대화하며 지내게 된다. 물론, 서서히 가족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게 되지만 말이다.
<걸리버 여행기 초판본>
걸리버 여행기는 그 당시 시대를 풍자한 풍자 소설이다. 특히 4부는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성모독 등의 이유로 삭제 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이후에 무삭제판이 재출간 됨으로 제대로 완결된 걸리버 여행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참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어릴 때 봤던 내용과 지금, 무삭제 완역본을 읽어보니 그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모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실제로는 모험과 재미보다는 시대에 대한 비난, 풍자가 주를 이루는 소설이었다. 약간의 혼란을 겪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떤 시대든 'NO'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걸리버 여행기가 순수하게 모험심과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상상의 나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랬다면 과연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출간했을까 의문이 들지만. 어찌됐든 나는 "걸리버 여행기는 모험 소설이다" 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읽고 싶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읽게 해주신 리뷰어 클럽과 현대지성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 이 리뷰는 리뷰어 클럽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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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