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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 작성일
- 2019.9.14
카니발
- 글쓴이
- 강희진 저
나무옆의자
이 책의 저자 강희진의 이력을 읽다 보니 <유령>이란 전작이 어쩐지 낯익었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을 나는 그해 8월에 읽고 서평까지 남겨뒀었다. 벌써 8년 전 읽은 책이라 그 제목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는데 마치 낯선 이의 글을 보는 듯 생소한 나의 서평을 읽고 나니 그제야 조각으로 흩어진 기억이 어느 정도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이후에도 강희진 작가는 몇 권의 책을 더 냈으나 <카니발>이 내가 읽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이 책의 화자는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20대 여성 예슬이다. 경남 산골 마을의 외딴집에서 예슬이네는 네 식구가 살았다. 개를 잡는 아버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어머니, 허구한 날 며느리를 구박하는 할머니, 천재 소리를 듣는 여동생이 함께 살았고, 가끔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절름발이 삼촌이 집에 들렀다. 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편견과 억측이 만든 헛소문은 예슬이네를 점차 파괴한다. 그리고 그 파괴의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와 할머니였다.
혼혈인으로 외모가 다른 예슬이는 또래에게 왕따를 당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반향언어, 욕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음성 틱 증상이 특히 심해 결국 학교에서도 쫓겨난다. 예슬의 엄마 오무라(조세피나)는 필리핀에서 나름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남편이 결혼 때 약속했던 필리핀 송금이 그나마 한국에 사는 외로움과 고난을 잊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촌사람들에게 쉬운 안줏거리에 불과했다. 남편과의 사랑도 그녀의 헤픈 행실로 둔갑해 비난당했고, 유일하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시동생과의 대화는 친족 간의 불륜으로 치부됐다. 오무라는 영어나 필리핀 향토어를 쓸 때 틱 증상을 보이지 않는 예슬이를 위해서라도 필리핀 이민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가족 이민의 불행한 결말을 이유 삼아 극구 반대했고, 동생과 아내의 소문이 무성할수록 잔인한 폭력의 강도만 높아졌다.
오무라의 불행했던 한국 생활은 그렇게 딸 예슬의 입을 통해 증언된다. 예슬이가 알지 못했던 일들은 오무라가 남긴 일기로 채워진다. 오무라의 일기에서 한국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오지랖 문화와 인종 차별, 성차별 등의 행태는 비단 책에서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카니발>에서와 같은 일은 마치 극단적인 일례처럼 보이지만, 가끔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주 여성의 현실은 더 가혹한 경우가 많았다.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방인과의 결혼을 선택하여 낯선 나라에 온 그녀들에게 한국은 차별과 학대의 나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에 작가의 말 제목인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는 이 글이 긴 여운을 남겼다.
가끔 업무 차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방문하곤 한다. 갈 때마다 많은 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이 북적이고 있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고, 시골이 싫어 도시로 떠난 한국 여성들을 대신하기 위해 외국인 신부가 증가 추세이다. 그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이다. 우리 역시 유색인종이고, 한국을 벗어나 백인 국가에 가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단지 피부색이 다르고,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의 민족이라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일삼는 우리의 이중성은 깊이 반성할 문제이다. 강희진 작가의 소설 <카니발>이 지적한 이 부끄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아이들이 까만 피부를 싫다고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자기보다 더 까만 피부가 싫다는 뜻이다.
백인 입장에서 보면 동남아의 까만 피부나 한국의 황색 피부는 별 차이가 없다.
한국은 끝없이 분류해서 계속해 타인을 만드는 나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한국에서 교육시키면 안 된다.
(오무라의 일기 중에서 p.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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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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