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개인적인 책 리뷰

간웅
- 작성일
- 2019.9.18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글쓴이
- 박영화 저
행성B
도진기 변호사의 최근작 <합리적 의심>은 이전의 저자가 내놓았던 시리즈물과 여타 다른 작품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장르소설보다는 경험담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판사조직 내부를 디테일하게 그리며 그들만의 리그를 보여준다. 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죄를 결정하는 모습에 판사란 직업이 가진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특히 형사법상의 죄는 '합리적 의심' 때문에 '법리'와 '정의'가 상당한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법원은 정당한 법 집행 기관으로 선의에 바탕을 둔 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편견이 이 책을 통해 사라졌다. (서두에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해 <합리적 의심> 소개했는지는 이후에 밝힌다.) 그렇기에 또다른 법 관련 도서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은 어떠한 차별성을 갖고 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질 지 궁금했다.
먼저, 저자 박영화는 16년 간 판사로 역임했고 지금은 17년째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다만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대부분은 판사로 재직중일 때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그 때 그 시절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가 판사로서 법의 심판을 내려야 했을 때의 고충과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했는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한다. 군법무관 시절 사병에게 지나치게 과한 벌을 내리려는 직속상관과의 갈등,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껴 선물을 보내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심판을 내리기 보다 당사자들의 화해를, 고집 센 부장판사을 보조하며 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유도했다고 한다.
자신의 실수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배당받은 사건 하나하나마다 정성을 기울였으며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재직 중인 지금까지도 정의로운 일이 아니면 수임하지 아니하며 되도록이면 법정으로 가지않도록 의뢰인들을 상담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문체와 내용이 정계에 발을 딛기 위해 내놓은 자서전이 아닐까 상당한 의심이 들어 검색해 보니 실제로 강릉시장에 출마했던 이력이 있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내놓은 책에는 자화자찬식 이력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행보를 예상케 하는 소신을 밝힌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치색이 짙은 주장은 과감히 제외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리뷰고 뭐고 책장을 덮었을 것이다.) 딱 자신이 몸담았던 사법계에 쓴소리(?)를 던진다.
사법농단을 화두로 삼으며 소신파 판사들이 일찍 있는 법복을 벗을 수 밖에 없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비판한다. (그런데 "16"년 판사 생활은 자신은 지시를 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법농단이 하루하침에 생겨난 악습이 아닐텐데 저자는 독야청청했다는 말인가.) 어쨌든 저자는 판사 한명 한명이 독립적인 법관인데 이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사연이 나쁘지만은 않다. <합리적 의심>처럼 법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다루며 책의 제목처럼 심장의 편에 서서 정의를 이야기한다. 자뻑만 겉어냈다면 도진기 변호사나 문유석 판사의 글처럼 설득력을 갖추었을텐데 아쉽다. 간혹 보이는 유체이탈 화법과 "내가 왕년에 말이야"식 문체는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저자는 숲을 가리킬지 몰라도 독자는 그 손을 볼 수 밖에 없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저자가 정치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컸나 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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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