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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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9.10.1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글쓴이
- 최용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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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읽었던 한 권으로 된 한국사를 수없이 반복하여 읽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그 나이대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도 분명 있었지만, 한 권으로 된 그 책은 나에게 한국의 역사가 마치 하나의 끝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기에 따로 학교에서 국사를 배우지 않더라도 계속하여 그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면 그 책의 내용이 한국사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하여 생긴 관심으로 여타의 책들을 통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으니 그 책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도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은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중립적인 위치에서 해당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소개하고 있으며, 기존의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한 권의 책으로 한국사를 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책들은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심지어 세계의 역사마저도 한 권으로 다루는 책들도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책들이 자칫하면 너무나 단편적인 사실의 언급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지만, 역사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역사의 필요성이 누누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어렵고 딱딱한 서술로 인하여 역사가 어렵다는 생각에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적어도 역사의 대중화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책이며,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한국사에 대한 최소한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간단하게 한국사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 서술의 오류에 대한 비판 및 한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을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어서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에 더하여 보다 깊게 생각한 부분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의 건국신화를 통한 역사 해석
'단군신화'와 더불어 등장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신화는 역사서에서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낯설지 않은 대목이다. 해모수의 아들로서 처음에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 훗날 자라와 물고기의 도움으로 부여로부터 무사히 탈출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라든지 역시나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신라의 시조가 된 내용들을 우리는 건국의 신성함을 다루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고대사에 대한 기록과 문헌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신화에는 꽤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신화의 내용에는 건국과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부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주몽의 탈출을 도운 자라와 물고기는 그들을 토템으로 믿고 있는 부족과 주몽의 연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박혁거세와 알영은 신라의 6부족 중에서 2부족에서 각각 왕과 왕비를 선출하지만, 이들이 독자적인 힘이 없기에 연대의 체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화 자체의 세밀한 분석과 달리 이 책은 백제의 건국 신화가 오히려 역사에 거의 가깝다는 점을 들어 신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온조와 비류가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각각 나라를 세웠다가 비류가 사망한 이후에 온조가 그들 세력까지 흡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는 이야기에는 신화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백제의 건국 자체가 이미 안정된 기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즉, 온조와 비류는 이미 국가의 틀을 갖춘 고구려에서 성장하였기에 훗날 건국 과정에서 국가의 체제에 대한 별다른 고민없이 이루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고구려와 신라의 신화를 비교해도 고구려가 부여의 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건국하였기에 고구려의 건국 신화도 신라에 비한다면 역사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번외로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와 훗날 신라왕이 되는 석탈해의 신화도 삼국에 비하여 사료가 부족한 가야의 상황을 짐작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실을 찾을 수 있다. 김수로와 석탈해가 우열을 가리기 위하여 대결하지만, 결국 석탈해가 패배하여 가야의 왕이 아니라 신라의 왕이 되었다는 점은 당시 가야의 세력이 신라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야가 자체적인 역사적인 사료를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신화는 더욱 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 장수왕의 평양 천도
고구려의 최대 전성기라 한다면 광개도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시기를 꼽을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광활한 영토를 물려받았으며, 그 자신도 다시 한 번 백제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를 선사하면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였기에 그를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끈 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장수왕은 만주 내륙쪽에 위치한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극명하게 나뉜다.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만주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으로의 확장이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의견과 만약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고구려 역사가 꼼짝없이 중국의 역사로 흡수될 수 있었기에 신의 한 수로 받아들이는 의견이 그것이다. 이러한 천도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에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도 이 부분은 단순히 수도를 변경했다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구려의 침공으로 웅진성으로 천도한 백제와는 분명 고구려의 천도는 그 상황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만주라는 내륙보다 오히려 평양이 바다로 진출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들어서 오히려 더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천도라는 의견도 해볼 수 있고, 고려의 인종이 서경으로, 조선의 정조가 화성으로 천도를 생각했던 것처럼 기존의 세력에 대한 갈등과 견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그저 짧게 언급된 과거의 역사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3. 갑자사화에 대한 색다른 해석
1504년의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생모였던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연산군이 이미 이전에도 폐비 윤씨에 대하여 몰랐던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다. 이전에 벌어진 무오사화에서는 훈구파의 사림에 대한 견제로 일어난 것이지만, 갑자사화는 이미 사망한 한명회는 물론 훈구파의 대신들 역시 참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짧게 언급되었지만, 훈구대신들의 막대한 재산을 몰수해 연산군의 과도한 유흥비로 충당하기 위한 이유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 채홍사를 파견하여 수천명의 여성들을 궁에 들이고, 민가를 헐어서 광활한 사냥터로 운영하였으니 분명 왕실 재정은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공신들이 주를 이룬 훈구대신들의 막대한 자산에 연산군이 눈독을 들였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갑자사화의 또 다른 의미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4.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병자호란 이후 함께 심양으로 끌려가서 함께 볼모 생활을 하였지만, 형제의 운명은 판이하게 달랐다. 외국 문물에 관심을 보이면서 청나라의 힘을 직접 목격하면서 당시 국제 정세의 현실을 깨달은 소현세자가 자칫 청에 의하여 왕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인조의 의심과 냉대로 인하여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 봉림대군은 거꾸로 형과 조카를 대신하여 효종으로 왕위를 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소현세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소현세자가 왕으로 등극하였다면 조선의 역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을지는 의문이다. 바로 효종의 북벌론의 실체 때문이다.
소현세자와는 달리 효종은 청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북벌을 준비한다. 신하들 역시 여전히 명을 숭상하고 청을 배격하는 입장이었으니 이론적으로는 효종과 신하들의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북벌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송시열은 효종의 북벌에 대하여 탐탁치 않게 여겼다. 실제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내부적인 수양을 주장하거나 자신들의 세력의 안정화를 꾀하기 위한 명분으로 북벌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효종과 신하들이 명분 측면에서 분명 부합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북벌론은 결국 허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과연 소현세자가 주자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하들을 이끌고 조선의 근대화를 이룬다는 것은 가능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 점에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감정적인 아쉬움은 아닐까?
5. 일본의 문화통치와 실력양성론
일본의 문화통치가 시행됨에 따라 내부적으로 실력양성론이 대두된다. 물산장려 운동이라든지 대학 설립이 그러한 구체적인 활동인데, 우리는 그간 교과서에서 이러한 활동을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실력양성론을 일본의 지배방식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에 편승하여 자치권을 획득하는 운동으로 비판을 하고 있어서 새삼 주목하게 된다. 식민지배 하에서의 신(新)문화라는 것은 일제에 의해 한계가 뚜렷하거나 방향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력양성론자들은 그것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실제 물산장려 운동은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시켰지만, 정작 일부 자본가의 이익만으로 연결되었고, 그나마도 실질적으로 일본의 산업에 이익이 되었다는 점과, 대학 설립 운동 역시 경성 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이내 잠잠해졌다는 점을 들어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실력양성론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인물들이 대부분 친일파로 돌아섰다는 점은 그 시기에 벌어진 실력양성론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과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6. 보천보 전투(1937년)와 김일성
광복 이후 소련 군복을 입고 북한에 입성한 김일성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젊은 것이 아니냐면서 가짜라고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책을 통하여 접한 적이 있다. 과거 미국 못지 않은 매커시즘이 자리한 한국의 상황에서 김일성의 독립 운동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일본군 출신으로 독립군을 소탕한 이력이 있었던 남한의 최고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937년 김일성이 항일투쟁에 있어서 성공을 거둔 보천보 전투에 대한 평가는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에 활약한 것이 맞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서는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고 하였다는 것이 맞다. 실제로 보천보 전투 이후 김일성이 소속된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일본의 대토벌이 이루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보천보 전투의 성과는 결코 미미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에 대하여 남쪽의 특정 세력들은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고, 북쪽에서는 과대 포장하여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외에도 그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들을 바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놓고 본다면 이 책이 그저 간략한 한국사에 대한 축약 내지는 요약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짧게 표현된 부분마저도 우리에게는 묵직한 주제로 보여지는 대목들이 많다. 예를 든다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개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것을 아주 짧은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다.
반민특위 활동 결과 : 친일파 7명 실형, 5명은 집행유예, 실형을 받은 7명도 이듬해 석방.
이것이 광복 이후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친일파에 대한 처벌의 전부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약 5년 간의 짧은 독일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71건의 사형선고와 3만 9,900여 건의 징역판결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 한 줄은 한국의 친일파 청산의 초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에 충성을 외치면서 교묘하게 징병을 주장한 이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으로 그리고 애국자로 둔갑한 상황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라는 점은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현실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어렵고 또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형성하는 토대가 바로 역사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면 분명 관심을 갖고 또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 문제와 갈등의 요소가 바로 역사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의도치 않은 세력에 의하여 휘둘릴 수 있다. 친일파가 보수의 탈을 쓰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기득권으로 자리한 이 상황은 역사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이 빚어낸 비극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우리의 상황을 보면 당장 미래가 아닌 현재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보니 이제는 내부에서조차 한국 역사에 대한 왜곡을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마저도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역사 인식의 수단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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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