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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글쓴이
이순신 저
서해문집
평균
별점9.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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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한번쯤 읽어보고팠던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성웅으로 받들어지던 장군의 면모를 더 잘알고 싶어서였고, 나이가 좀 든 뒤에는 영웅의 모습 뒤에 숨은 인간적 모습을 찾아보고 싶었다. <칼의 노래>를 보고 난 뒤에는 이순신의 문체마저도 궁금해졌다.

그 모든 바람 바람을 다 모아서, 숙원사업 한번 이뤄낸 셈인데,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태생적 한계. 일기란 처음부터 독자를 염두에 두고 씌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리도 없다. 자기 일기도 한참 뒤에 읽으면 무슨 일로 내가 이토록 흥분했던가가 감감해지고는 하는데, 하물며 남의 일기야 말할 것도 없다. 앞뒤 설명이 없다보니 공감을 이어가기가 힘든 구석이 많다. 일기라는데 원래 그런 것이니, 이런 단점은 편집자가 좀 보완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런 친절이 없으니 더 답답하다.

역시 일기가 갖는 태생적 한계겠지만 결정적인 장면 묘사는 다 생략된 것도 아쉬움이다. 조선 수군 함대가 연전연승을 거두던 바로 그 시기, 난중일기는 상당 부분 생략돼 있다. 한참 바쁠 때에는 일기를 쓰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전황 묘사는 철저히 장계의 몫으로 넘어갈 뿐 일기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장수의 일기라 할지라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일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갖는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심리의 재구성에는 탁월한 효과를 갖는 것이 역시 일기다. 특히 원균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난중일기'에 원균이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언제나 '흉악'하고 '가소로운' 존재로만 그려진다. 뭘 잘못했기에 이런 평을 듣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런 평가는 자신이 직접 보고 내리는 바도 있지만, 대개는 부하 장수들에게 전해듣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랫사람들이란, 대개는 윗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문구가 '활 10순을 쏘았다'는 것이다. 국궁 50발을 쐈다는 얘기인데, 그래서 다른 장수들과 시합을 벌이면 대개 이기고 있다. 물론 이기면 좋아한다. 그러면서 같이 시합한 장수가 활을 잘 못쏘면 역시 '가소로워' 한다.

전쟁이 중반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거의 언제나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 등장하는 것도 예기치 못했던 바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면서 기력이 쇠잔해 가는 스스로를 담담하게 그리는 모습이 싸하다.

조선사회의 모습을 윤색 과정없이 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데, 사실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게 한다. 한달에 두번씩은 망궐례를 드린다. 새벽부터 예하 장수들 다 모아놓고 대궐을 향해 절하며 충성 서약하는 생사인데, 참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나라의 제삿날에는 관청에 나가지 않는다. 선조가 조선의 14대 임금이었으니, 그 전의 임금과 왕비 기일을 챙기자면 1년에 26일은 노는 날이었던 셈이다. 여기다 자기 조상 제삿날에도 쉰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해 안되는 구석이 있다.

한때 이순신 자살설을 꽤 설득력있게 받아들였던 적이 있다. 나아가 이순신은 자살을 빙자해서 세상을 등지고, 실제로는 20년 가까이 더 살았다는 설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기'에 드러난 모습만 갖고 볼 때, 그런 설은 그야말로 '썰'일 뿐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을 예기치 못했다. 그냥 일상적인 하루의 일과가 이어지다, 그냥 일과의 하나처럼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후세를 사는 우리에게 그의 죽음은 하나의 클라이막스지만, 그 자신에게는 죽음마저도 하나의 일상이었을 뿐이다. 일기로만 맛보는 독특한 감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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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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