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서평

enfantlove
- 작성일
- 2019.11.26
아날로그 살림
- 글쓴이
- 이세미 저
센세이션
지난 여름 어느날, 딱히 할 일도 없고해서 유튜브에 들어가 이런 저런 동영상을 기웃거리며 보고 있었다. 한창 살림에 맛을 들이던 때라(나는 주기적으로 그렇게 한 번씩 살림에 푹 빠질 때가 있다.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게 함정이지만......) 각자의 살림 노하우를 소개하는 동영상들을 파도타기 하듯 보고 있었다.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가 아래쪽에 주루룩 소개되어 있는 다른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고, 또 다른 동영상을 보고 그렇게 연속으로 보던 중 한 유튜버의 동영상에 몹시 끌려서 아예 그 유튜버의 동영상들을 구독신청했다. 그리고 매일 짬짬이 그녀의 동영상들을 하나씩 집중하며 보던 중 신기한 물건들을 발견했다. 소프넛, 밀랍랩, 소창행주, 수세미(루파 luffa), 천연세제들(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등의 물건들인데 처음 보는 나로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살림도구들로 깔끔하게 살림을 하는 그녀는 '미니멀리즘'과 동시에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주부로서 매일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지혜들을 깔끔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음성도 없이 오직 화면 아래에 자막으로만 내용들을 소개하는 동영상인데도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는 그녀의 노하우들은 나에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동경을 일으키기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녀가 영상에서 소개하고 있는 살림 도구들을 나도 하나 둘 사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소창행주, 수세미(루파 uffa), 천연세제들(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마치 동영상에서 보던 그녀를 책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평소 생활철학을 비롯해서 살림수칙, 사용하는 살림도구 들이 그녀와 같은 점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니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똑 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참 배울 게 많고 야무진 저자는 내가 그렇게도 어려워하는 살림을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의하며 이 책을 써내려간다.
'살림'은 '살리다'라는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해도 티도 안 나는, 게다가 월급도 없는 그런 일이지만 살림은 나와 가족을 보살피고, 살리는 중차대한 일임이 틀림없다.
- 본문 21쪽 인용 -
정말 그렇다. 해도 티도 안 나면서, 조금이라도 안 하면 무진장 티가 나고야 마는 살림! 가족들 편안하게 해주고, 그 누가 와도 흉보지 않을 수 있도록 야무지고 똑 소리나게 하고 싶은 게 살림이건만 워킹맘이라는 게 나의 한계인지 해도해도 참 만족스럽지 않아서 고민이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생각처럼 '가족을 보살피고, 살리는 중차대한 일'이라는 건 잘 알겠는데 때로는 그 살림을 꾸려간다는 게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벗어 던지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럴 때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작은 일부터 하나 둘 시작하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들부터 찾아서 하나 둘 마무리짓다 보면 어느새 활력을 되찾아 또 다른 집안일들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저자 역시 그러한가보다.
일단 정리할 구역과 날짜를 나눈다. 월-싱크대, 화-식탁 주변, 수-신발장, 목-옷장, 금-책장....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루에 다 하려고 했다가는 첫날 지쳐 나가떨어질지도 모른다. 정리는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많은 고된 작업이다. 오늘만 살 것도 아닌데 너무 하얗게 불태우진 말자.
- 본문 52쪽 인용 -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집안을 다 뒤집어 엎어서 한방에 깨끗이 치워보려고 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결국 체력이 방전되어 뒤집어 엎은 채 몇날 며칠, 아니 몇달을 그렇게 살아가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차례를 반복한 후에야 저자처럼 요일별로 그날 할 일을 정한 후 하나씩 하나씩 하다보니 부담은 덜어지고 만족감은 커지며 살림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맛보기까지 했다. '티끌 모아 태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의 의미를 살림을 하면서 제대로 깨달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살림에 맛을 들이기시작했더니 나도 어느새 환경운동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다른 도시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집에 오셨다. 엄마가 오시면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겨드리려고 하는 편인데, 이번 여름에 그 유튜버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사놓은 살림도구들이 넉넉히 있던터라 엄마에게도 나눠드렸다. 루파 수세미부터 시작해서 각종 천연세제들, 몇 번 삶고 빨기를 반복해서 길들여 둔 소창행주들을 바리바리 챙겨드렸더니 엄마가 흐뭇해 하셨다. 마치 도를 닦고 수련을 하던 어느 날 스승님이 제자에게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고 명하시는 장면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엄마가 천연수세미를 굳이 쓸 필요가 있냐고 말씀하시기에 일반 아크릴 수세미가 얼마나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는지 설명해드리며 천연 수세미를 써야함을 강조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 혼자서 한다고 되냐? 대한민국 국민이 다 같이 하면 모를까 말이다."
순간 답답함이 살짝 밀려왔지만 이내 답변을 드렸다.
" 엄마, 나부터라도 시작해야죠. 누구부터라도 시작해야죠. 그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열 사람이 되고, 백 사람이 되다보면 모두가 다 하고 있지 않겠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말씀드렸다 싶다. 내 주변만해도 친정엄마처럼 '나 하나가 무슨 힘이 있어?'라는 생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이해와 동떨어진 채 살림을 하는 주부들이 많다. 그런 많은 주부들에게 저자는 조심스레 지혜로운 해결책을 권하고 있다. 부담스럽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며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서 해볼 수 있도록 쉽고 편안하게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 마치 "이런 방법도 있는데 한 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묻듯이 아날로그 살림의 4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 사람에게도 자연에도 해롭지 않은 소재의 물건 선택하기
2) 재활용보다 재사용하기
3) 최소한 필요한 물건만 구비하기
4) 쓰레기 버리는 날짜 체크하기
이들 중 3번이 제일 잘 안 지켜지고 있는데 이참에 제대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고자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다보면 버리는 쓰레기 양도 점점 줄어들겠지? 이렇게 아껴야 할 곳에 아끼고, 써야할 곳에 제대로 쓰다보면 언젠가 나도 이런 '아날로그' 속에서 살림의 참맛을 느끼리라 믿는다.
어제 폭폭 삶아서 널어 둔 소창행주가 빨래건조대에서 얌전히 건조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점점 '아날로그 살림'의 재미를 느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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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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