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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5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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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아날로그 살림
글쓴이
이세미 저
센세이션
평균
별점9.6 (70)
lemon5978

전업주부가 없는 우리 집에서 살림을 나 혼자 하고 있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 식구 중 유일한 여성인 나는 알게 모르게 살림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빠와 나와 남동생의 살림 참여 비중을 따져보면 1:4.5:4.5로 볼 수 있다. 나와 남동생이 거의 모든 살림을 반반 나눠한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나 혼자만 살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유는 살림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인식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탓이다.

만약 오늘 쓰레기를 내놓아야 하는 날인데 다른 일정으로 인해 쓰레기를 내놓지 못했다면,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음 쓰레기 배출일이 올 때까지 가득 찬 쓰레기통을 보면 짜증이 나고, 가족들이 쓰레기통을 힐긋 쳐다볼 때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본 것일 테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화가 난다. 집에 사람이 셋인데 왜 나만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지금껏 나는 무의식중에 살림을 하찮은 일,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쓰레기를 치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가치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것이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나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게 화가 났던 것이다.

“‘살림’은 ‘살리다’라는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해도 티도 안 나는, 게다가 월급도 없는 그런 일이지만 살림은 나와 가족을 보살피고, 살리는 중차대한 일임이 틀림없다.” -p.21

살림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이는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같은 살림을 하더라도 내가 가족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 나는 지금껏 그렇게 해오지 못했었다.

이세미 작가님을 만나 대화를 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작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였다. 그럴 때마다 작가님은 그렇지 않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당시에 나는 사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작가님을 대단한 사람을 추켜세움으로써 애써 숨기고 싶었던 나의 비겁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끔 살림들을 소개할 때면 “정말 대단하시네요.”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의 뒷면엔 ‘나는 그렇게는 못해요’라는 뜻이 숨어 있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이건 전혀 대단할 것도 없어요. 처음엔 조금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냥 천천히 조금씩 바꿔가다 보니 어느새 생활이 돼서 이제 특별한 노력이라고 할 것도 없는걸요.”” -p.224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실 때면 항상 질질 흘리곤 해서 집에서도 빨대를 애용하는데, 작가님과의 대화 이후로 대나무 빨대를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매번 빨대를 세척해서 쓴다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무 재질이어서 먹고 나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고 말려줘야 했다. 설거지는 자고로 미뤄야 제맛인데 대나무 빨대를 사용하게 된 이후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그리고 매번 빨대를 세척하고 말려 사용하는 것이 완벽한 일상이 되었다. 전혀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편리함에 중독되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이 책에서는 조금 번거로워도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살림 방법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장 바꾸라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은 최대한 오래 쓰고 더 이상 그 살림도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그때 이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그때가 되면 나도 아날로그와 살림의 가치를 아는 작은 환경운동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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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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