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를 믿어 (글쓰기 자기계발)

신통한다이어리
- 작성일
- 2019.12.7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 글쓴이
- 소크라테스 외 1명
현대지성
1.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 생각에는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주시는 이유도 인간의 지헤라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께서 소크라테스라는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나를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아,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너희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 p.23
강제적인 죽음 앞에서 삶의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억울하게 죽어가는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견디어 내고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성자가 아니라서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나의 모든 걸 걸었을 때는 특히.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신을 부정했든 안 했든, 그는 또다른 사회의 분란을 막기 위해 기꺼기 죽음을 택했다. 그가 덤덤히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라면, 그건 분명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이 있었고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분명한 가치관을. 아무리 오랫동안 노력해도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산 너머너머에 있는 그의와의 대화는 플라톤에 의해 쓰여졌고, 그도 소크라테스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그래서 내가 쓴 "New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너머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직관적으로 짐작하고 쓴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소크라테스를 즐긴다. 그의 무대를 즐기고, 그의 대화를 즐기며,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끔 내 머리로 넘어오는 이해되는 말들을 즐긴다.
2.
그런데 만일 내가 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길이 두려워서 신께서 정해주신 천직을 버리고 이탈해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두렵고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이 두려워 신탁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누군가가 그런 나를 , 신들을 믿지 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를 뽐내는 자라고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다면, 그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 될 것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헤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못하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 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 pp.35~36
나는 정말로 무지한 사람이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들에는 지식이란 게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이번 리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100프로 이해했다면, 나는 정말 리뷰를 이보다 100배는 더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무지한 나를 좋아한다. 모르는 것을 어설프게 아는 척하기보다는 모르는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느낀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무지하기에 죽음 이후에 가는 천국이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기에 나는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또 다른 궤변이 될까?
3.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 p.59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떠났다.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인 크리톤은 그를 탈옥시키고자 하나 소크라테스는 응하지 않는다.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
4.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소크라테스의 변명), 그리고 크리톤의 탈옥제안을 거절한 상황에서의 대화(크리톤), 그리고 사형당일날의 대화(파이돈), 아가톤이란 비극작가가 아테네의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베푼 연회에 참석했을 때의 대화 (향연)등 총 4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역시 소크라테스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주변인물의 사상 등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선고된 당시 , 소크라테스의 심적 상태와 그가 왜 죽음을 택했는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기도 했다.
5
"그렇다면 동일성은 저 서로 동일한 사물들과 닮았을 수도 있고 닮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소.
"하지만 닮았든 닮지 않았든,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지. 자네가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보고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해냈다면, 이 둘이 닮았든 닮지 않았든, 필연적으로 그것은 기억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네."
- p.125
New 소크라테스 (22) 편안한 대화하기
카 : 우리 끝나고 대학로 가자
타 : 대학로?
카 : 사람 많은데 가고 싶어서
파 : 아 그래서?
당신은 신통한이기도 하고 이상한이기도 하신 분인가요?
나는 그들에게 또 말했다.
아니요.
그럼 누구신가요?
나는 그들에게 또 말했따.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편안하지 않아요.
나는 그들에게 또 물었다.
편안함은 어떤 것인가요?
과연, 나의 "New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닮아 있는가? 닮든 닮지 않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상관관계를 통해 나는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높은 것도 아니요, 더 잘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기존의 사상의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을 덧잎여 창조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철학도 사상도 즐기다. 그러다보면, 무언가를 만날 것이다. 거기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또 다진다. 리뷰도 독서도, 포스팅도 즐기면 그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천국에 닿아있겠지. 소크라스는 그렇게 희망을 주고 떠났다. NEW 소크라스테스는 고통이 아니라, 완전한 희망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현대지성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좋아요
- 6
- 댓글
- 8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