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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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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글쓴이
에릭 클라이넨버그 저
웅진지식하우스
평균
별점9 (36)
아그네스

 예전에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 학교에 다녀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그 원인은 새로 생긴 아파트 주민들이 자기네 아파트를 경유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싫어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을 철책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외부인들이 들락거려 자신들이 범죄에 노출되므로 위험하다는 게 이유다. 외부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씁쓸하지만 어른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아이들이 무얼 배울까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보다 좋은 지혜를 찾지 못한 주민들의 해결책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뉴스다.

 

 1995년 시카고에 7백여 명의 사망자를 낸 폭염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재난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한 곳인 엥글우드와 가장 적은 곳 중 한 곳인 오번그레셤은 비슷한 빈곤 지역인데도 사망률에서 큰 차이가 났다. 이 점에 의문을 품고 자연재해와 관련한 사회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저자는 현장 답사를 통해 양적 자료에 잡히지 않은 실태를 발견했다. 그것은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Social Infrastructure의 차이이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 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장소에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이 같은 장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준하게 반복해서 모여들 때, 특히 즐거운 일을 하며 교류할 때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싹트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의 차이가 사망률의 차이로 이어지고 우리 삶의 질을 바꾼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비만이나 흡연처럼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더 나아가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은 기후 변화와 불평등의 심화, 민족 간 분쟁 등으로 인한 갈등 해소와 민주주의 실현에도 필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도서관은 지금까지 저평가되었으나 가장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 중 하나다. 저자는 "도서관과 사회적 인프라가 지역 사회 활성화에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고립과 고독 같은 온갖 개인적인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도 필수"라고 한다.

 

 또 도서관처럼 사회적 인프라의 모범 사례라 할 수는 없어도 다른 많은 장소들과 기관들도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한다. 부모의 참여를 독려하는 보육 시설을 통해 부모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며, 학교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우고 우정을 쌓으며 미래를 대비한다. 그밖에 놀이터와 교회, 카페, 서점, 이발소 등의 상업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며 지역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끼게 함으로써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주변의 소매상점들이 단지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곳만이 아니라 동네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한다는 점이다. 이는 '길 위의 눈'을 통한 수동적 감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 녹지가 잘 관리되고 주민들이 녹지를 자주 이용할 때도 안전한 사회적 인프라에 기여한다. 아파트 주변에 초목이 많은 곳이 범죄율이 낮고, 주민들의 공격성과 정신적 피로도가 낮다는 연구도 있다.

 

 지역 사회에서 사회관계의 강도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남용 사이에도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실증적 연구도 있다. 견고한 지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될 가능성이 낮은 반면 마약 사용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될수록 약물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처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률이 사회연결망이 약한 사람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공동체 텃밭과 도시농장도 다양한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해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고 응집력과 사회 참여를 증진하며 스트레스 수준을 낮춘다. 반면에 옥상 정원은 지역 사회 주민들을 연결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달리 사회적 인프라 형성을 헤치는 장소와 조직도 있다. 특정인만 가입할 수 있는 사교 클럽, 서로 분리된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인종 분리 수영장 시설,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동네, 분리 장벽, 가짜 뉴스가 담긴 광고와 차별과 양극화를 부추기는 콘텐츠를 확산해 이익 창출을 하는 기업들 등이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의 안전만 신경쓰느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길을 막은 주민들의 선택도 사회적 인프라를 헤치고 고립화를 자초하는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다니는 아파트 단지 안의 길 바닥에 예쁜 색으로 페인트 칠을 한다든가 나무를 심어 상징화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웃과 아이들의 마음도 밝아지고 아파트 주민들의 선의도 전달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된 노키즈존을 비롯한 몇몇 부정적인 사건들과 긍정적인 사회 정책들이 생각난다. 모두 별개의 일들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인프라 형성을 돕는 데 기여하는가, 아니면 헤치는가.

 

  저자는 "만일 우리가 사회적 분열 위로 다리를 놓는 데 실패한다면 그 분열은 우리가 계속해서 존재할지 여부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어떤 종류의 사회를 만들 것인지가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거다. 저자에 의히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물리적 및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가 우리를 돕고 지탱하고 보호하는 데 가장 적절한지에 관한 포괄적인 대화""각 도시와 지역에 산재한 취약점과 가능성에 관한 모든 종류의 집단지성"을 이용하고 이와 함께 "시민성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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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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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사진

    산바람

    작성일
    2019. 12. 16.

  2. 대표사진

    아그네스

    작성일
    2019. 12. 17.

    @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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