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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9.12.22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 글쓴이
- 박현선 저
헤이북스
한때 질 좋은 빈티지 겨울 외투를 구입해 입는 게 나의 낙이었고, 인터넷 아이쇼핑은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내가 한때 이 세계(?)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세상에는 엄청 예쁜 겨울옷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시 이렇게 구해서 입은 옷 중에 갈색 코르덴으로 된 A 라인 코트가 있다. 브랜드는 써스데이 아일랜드. 질도 괜찮고 옷도 참 예쁘게 빠져서 겨울 몇 해 동안 내 최애 아이템이었다. 어느 중고 사이트에서 구입했는데 내가 구입한 가격이 2만 5천 원이던가. 원래 주인이 한두 번 입었을런가 말랑가, 정말 새 옷이었기에 가격도 저렴하고, 브랜드도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을 당시 내 기쁨은 진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새 옷을 사 입는다. 그것도 브랜드 옷으로... 유행은 정말 빨리 바뀌고 수십만 원하던 옷들이 다음 해에, 또 그 다음 해에는 몇 만 원씩 가격이 뚝뚝 떨어져 덕 다운은 물론이고 구스다운(그것도 충전재 80:20 함량)까지 검색만 잘 하면 3~4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이 가격이면 '새것 같은 중고 코트'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에 요즘엔 새 옷을 사 입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패션이, 저렴한 패스트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새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긴 좋은데, 어느 정도 죄책감은 따라온다. Easy come, easy go. 이 영어 숙어는 옷에도 해당한다. 싸고 유행이라서 쉽게 산 옷은, 그만큼 옷에 애착도 안 생기고 쉽게 버릴 수 있다. 또한 요즘엔 상식이 되었다시피, 옷 한 벌 제작하는 데에 배출되는 탄소와 소비되는 물과 살충제 등은 실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늘 양심에 찔린다. 그래도 내 양심보다 강한 것은 '돈'이다. 저렴하고 소재 좋고 거기다 '새'옷의 유혹은 실로 강하다.
패스트패션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준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목조형가구학을 전공하고, 학업을 더 이어가기 위해 '핀란드행'을 선택한 분이다. 그곳에서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며 현재 핀란드에서 10년 넘게 살고 계시다.
그곳에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배정받은 방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어서 처음으로 '중고 매장'에 갔다고 한다. 그것이 '중고 가게'와 인연이 되었고 핀란드에 살면서 보다 깊어진 환경에 대한 관심, 소비와 폐기에 대한 질문으로 이렇게 핀란드의 중고 가게에 대한 책을 기획하고 쓰게 되셨단다.
처음에는 저자의 핀란드에서의 경험담이 주로 나오고, 그다음부터는 핀란드에 어떤 형태의 중고 매장이 있는지, 핀란드에서 활발한 벼룩시장은 누가 참여하고 어떤 분위기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그래서 앞부분은 에세이 같은 느낌이고, 뒷부분은 가볍지만 유익한 심층취재 기사를 읽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으로 '북유럽'을 상당히 이상적인 곳으로 상상한다. 복지 빵빵하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만큼 다른 이에 대한 불편한 간섭은 일절 없는 나라이며, 세련된 건축물과 모더니즘 한 인테리어 속에서 쾌적하고 안락하게 살며, 주말마다 북유럽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논다고.
이런 생각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우리가 북유럽을 너무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곳도 이곳처럼 다양한 성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일 뿐이다. 중고상품에 대한 북유럽 사람들의 생각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한다. 편견도 있고 우려도 있었단다. 지금 현재도 중고라면 질색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다.
핀란드에 중고 문화가 정착하게 된 계기는 바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이어졌던 경제 대공황 때문이란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집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기부하거나 벼룩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지금은 중고물품에 크게 거부감 없는 아이들이 자라서 더욱 이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다던데, 이는 좋기도 하지만 안 좋은 면도 있다고 한다. 중고 시장이 계속 꾸준히 자랄 수 있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또 패스트 문화가 산업 전반에 퍼지면서, 옛 물건의 내구성이 좋고 지금의 물건은 질이나 내구성이 영 형편없어서 옛 중고품을 사랑하는 사람도 꽤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중고 시장이 보다 커지고 있는데, 이 책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나의 소비가 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꼭 생각해 봐야 한다. 내 물건이 내 손에서 떠났다고 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생산 - 유통 - 소비 - 재사용 / 재활용>, 이제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우리보다 먼저 환경 문제에 눈을 뜬 핀란드 인들에게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일반 사업이나 사회적 사업으로 벤치마킹할 요소도 담겨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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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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