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

아그네스
- 작성일
- 2019.12.26
페미니즘의 도전
- 글쓴이
- 정희진 저
교양인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전체적으로 내용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새로운 발견을 했다. 아, 이런 내용도 있었나? 또는 어,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이 책이 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은 열 번 이상 더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것 같아 다시 한번 찜해둔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와 닿은 내용과 새로운 발견을 중심으로 남긴다.
1. 여성주의에 대해
기존의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목소리가 전부라고 믿을 때 우리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대안) 세계가 가능하며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유일(단일)한 것으로 군림해왔던 서구 남성의 기존의 목소리는 급속히 상대화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서구 남성 중심의 사유 방식이라면, 여성주의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라고 믿는다. 여성주의는 차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53p)
이번에 다시 읽으며 새삼 다가온 것이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이다. 여성주의가 저항이라기보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지금의 권력 차이를 조금 더 평등하게 만들자는 협상 수단이라는 점이다. 우리 일상과 가정에서부터 해당하는 말이기에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페미니즘을 알고나서부터 참기보다 일상에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더 행복해졌고 이해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2. 가부장제의 모성 이데올로기
가부장제는, 가족은, 국가는, 민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활용·매개 ·동원함으로써만 유지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65p)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역할은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시선·해석· 필요· 기능· 환상이다. (66p)
가부장제에서 어머니/여성의 주체성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살며 희생해온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도는 성인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암으로 투병중이셨는데도 다가오는 명절의 차례 음식 준비를 걱정하셨던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난다. 저자의 조언대로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짐한다.
3. 화학적 거세? 또다른 남성 이데올로기
문제는 성범죄의 원인이 성별 권력 관계의 불균형 때문이지, 남성 호르몬 과다로 인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화학적 거세'는 문제를 왜곡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 경우에는 매우 질 나뿐 맥거핀(속임수나 미끼)이다.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기는 혈액이 조직을 채우는 것인데, 이는 뇌의 역할이고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자극'의 내용은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화학적 거세'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실제 효과도 없다. (125p)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효과가 없음이 스스로 드러났나보다. 아직도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독서모임에서 한 여성이 그런 말로 남성의 입장을 옹호했다가 비판받았다. 평소에는 이성이 남성의 전유물인 듯하다가도 성과 관련해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인 양 비이성적인 태도로 나오는 남성들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새롭다.
4.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은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서화된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역사가 출발하다 보니, 그동안 역사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 '대해' 쓰여진 문서나 재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것은 여성에 대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남성들의 관념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지식은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 (213p)
유사 이래로 여성은 가정과 육아에 제한되고 공적 참여와 교육에서 배제돼 오면서 여성에 대해 말하고 판단하는 존재는 늘 지배층 남성들이었다. 남성들의 말과 글에는 한계가 명백했고 성차별적 내용들이 종종 사실인 듯 전해졌다. 이제 여성들은 스스로 말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 앞장서 온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내용들을 다시 생각해보며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날 때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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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