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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마녀
- 작성일
- 2008.12.17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 글쓴이
- 허남혁 저
책세상
당신이 어떤 것들을 먹는 지 알려주면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드리지요.
-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
서양 속담에 'I am what I eat'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뜻으로, 먹는 것이 '나'라는 존재와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먹거리는 그 자체로 사회이자 자연이며 문화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이런 '먹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광우병,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태 등 우리에게 '먹거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태를 겪었던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내 육체를 잠시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 공급원이 아닌, '먹거리' 자체가 가진 힘과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여기서 만나볼 수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 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식량을 비롯하여 의복, 가옥의 재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느니만큼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의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농민의 세상은 무궁무진합니다.' 매헌 윤봉길, <농민독본(1927)>
먹거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양 뿐만이 아니었다. 윤봉길이 말했듯이, 우리나라도 '먹거리'는 곧 생명창고를 의미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 전 세계의 먹거리들이 우리 식탁에 놓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호주산 불고기,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열대과일, 중국산 쌀 등 오늘 식탁에 놓여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것들이다. 무섭지 않은가? 내 식탁에 놓인 음식, 특히 가공 식품은 그 원재료들이 어디서 언제 사용되었는 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GMO가 첨가되지 않았다고 라벨을 붙인들 그 말에 순진하게 넘어갈 소비자가 있을까? 우리 식당은 미국산 안 쓴다고 주장한들 그 말을 과연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아닐 지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일까?
이제 더 이상 먹거리는 순수한 '먹거리'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문화가 되었고 나아가 네슬레, 카길 등 다국적 기업들의 판매 '상품'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는 모든 것을 시장 논리로만 재단하려는 기업들이 있었다. 그리고 각국 정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따져보자. 왜 미국이 우리나라에 밀가루를 주었을까? 쌀도 생산하는 나라가 왜 굳이 밀가루가 주식이 아닌 나라에 밀가루를 공급했었는지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사람의 입맛은 한순간에 바꾸기 어렵다. 이 말은 그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행가서 된장, 고추장이 생각나고, 윤기 잘잘 흐르는 쌀밥이 생각나면 그 자체로도 허기가 진다. 그걸 먹어야 기운이 나는듯 하다. 현지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말이다. 여행가서 왜 비싼 돈을 주고 한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까? 미국이 의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인들의 입맛을 바꾸는 것. 밀가루 음식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것은 곧 '밀가루'라는 상품의 판매와도 직결되었다.
단순히 먹거리만 자원, 무기가 된다면 괜찮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공학'이라는 더 큰 문제와도 맞닥뜨리고 있는 형편이다. 나아가 종자도 판매 상품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 캐나다 농부와 다국적 기업의 재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농촌이 살지 못하면 우리는 억만금을 들고서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죽어갈 지도 모른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종자 판매권을 한 다국적 기업이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다국적 기업이 농민들이 매년 종자를 사야만 그 열매를 팔아준다고 하면? 가격은 그 쪽 마음대로가 아니겠는가.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틀렸다. 이는 이 책에 나와있는 사례이다. 그리고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현실로 충분히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바탕으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먹거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먹거리 공동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연-사회-인간의 네트워크이며, 먹거리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먹거리 관계망은 사회적, 생태적으로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으며 윤리적이지도 않다. 서문에서
우리 지구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 자원이 한 쪽은 과잉이고 한 쪽은 모자라서 굶어죽어가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 게 과연 그 사람들만의 탓일까? 그리고 우리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상관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우리와 상관이 있는 이야기다. 어느 하나가 과잉이라는 이야기는 그 '과잉 생산'을 하기 위해 다른 자원들이 넘치게 투입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그 '다른 자원'들은 부족하게 될 것이 뻔하고, 이들을 '과잉생산'하기 위해 투입했을 경우 이를 키우기 위해 자연이 훼손되었을 거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쉽게 생각하면, 커피 원두가 700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리고, 우리는 거기에 '물 탄 커피'를 오천원 넘게 주고 사고 있다. 커피 회사 배만 불려주는 셈이다. 손해는 누가 보고 있는 걸까?
거대한 입술과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제 몸의 전부인 저
굶주린 입들 무한궤도로 달려와 아이들을 삼키고 있다
입안 가득 고깃덩어리를 물고도 늘 배고픈.
- 박성우, <햄버거(2002)> -
햄버거와 각종 가공식품에 물들어 가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기에 우리는 '먹거리'를 더더욱 걱정해야 한다. 먹거리를 잘못 다루면 병이 오기 마련이니까. 유기농 식품, 비 유기농 식품으로 먹거리에서도 계급이 갈리는 요즘, 광우병과 GMO로 시위가 벌어지는 식품 과학의 정치성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한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우리의 작은 실천이 이 관계망을 바꿀 수 있다. 로컬푸드, 공정무역, 친환경 유기 농업 같은 대안들은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윤리와 책임, 사회적 연대를 강조한다. 내 밥상을 좀 더 바람직하게 바꾸어나가는 것은 곧 세상을 좀 더 살기좋은 곳으로 바꾸는 길이다. - 서문 中에서
더 좋은 세상.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가꾸자. 단순히 좋은 먹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그것은 '먹거리'에 대한 아주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어느 누구든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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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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