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남은 책

gps5059
- 작성일
- 2020.1.8
경찰관속으로
- 글쓴이
- 원도 저
이후진프레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을 참 쉽게 말했다. "그럼, 그렇지."라는 비꼰적도 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원망 섞인 말을 한 적도 있다. 기사로 접한 모습,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영상에 비춘 모습만으로 쉽게 판단했고 가볍게 말했다. 어느 경찰관이 나에게 보낸 편지, 《경찰관속으로》를 읽고서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 쉽게 말했다는걸.
임희정 작가님의 북토크에서 책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책을 구입하고 난 뒤에도.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을 줄 몰랐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덕분에 확신했다. 나는 지금 정말 좋은 책을 읽고 있다는걸. 경찰관으로 살아낸 힘겨운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무엇보다 이 기록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참 슬펐다. 옛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올린 이야기가 아니라서. 지금도 누군가의 절망과 좌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경찰관의 일기라서. 마음이 아팠다.
익명의 경찰관 윈도 작가는 굵직한 대작을 쓴 작가보다 나에게 더 많은 울림을 주었다. 초반에만 힘이 있고, 뒤로 갈수록 감동이 감하는 글이 아니었다. 각 이야기마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몰입하게 만든 말, 언니라는 호칭도 좋았다. 편지처럼, 대화하듯 건네는 문체도 좋았다. 마치 친한 동생이 "언니 있잖아."라는 서두로 쏟아내는 고민을 한참 들은 후, 서로에게 들어줘서 고맙다고 들려줘서 고맙다고 마음을 나눈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책을 읽으며, 공감한다는 말을 내뱉기조차 힘들었다. 내가 책으로 가늠한 것을 경찰관의 마음에 비추면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할 수 없겠지만, 책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자리에, 민원과 형사 사건 사이에, 옳음과 그름 앞에서 수많은 딜레마를 겪어야만 하는 그 일을. 경찰이란 직업과 나의 자존이 수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경찰관속으로》를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 많았다. 물론 이 책이 모든 경찰의 생각과 마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분명 이 글과 다른 경찰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비춰진 모습이나 사람들 입으로 쉽게 말하는 모습과 다른, 이 책 속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기에. 《경찰관속으로》를 읽는 순간이 나에게는 참 소중했다. 수많은 사건의 현장과 지나칠 수 없는 목소리에 곤두서야 하는 경찰관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길고 찌질하고 징징대기만 한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이 편지가 끝나면 잠시 나를 위해, 원매를 위해, 그리고 어딘가에서 지금을 이겨내고 있을 경찰관을 위해 기도해줘. 나도 언니를 위해 기도할게. 더는 아플 일이 없을 거라는 불가능한 말보다는, 아파도 적당히 아프길,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아프기를 바라면서. _ 《경찰관속으로》, 191쪽
저자의 당부처럼 길에서 경찰관을 보면 지금까지와 다르게 바라볼 것이다. 경찰이기 전에 나와 같은 사람임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무심한 말에 그들의 고단했을 어제를 가늠하고, 싱긋 짓는 미소에 다행인 오늘을 함께 기뻐하며 달려가는 그들의 걸음을 응원하는 사람이고 싶다. 여전히 나는 그들에 대해 모르지만, 다행히 모른다는 것만큼을 알았기에, 이젠 쉽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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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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