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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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글쓴이
플라톤 저
문예출판사
평균
별점8.6 (71)
짜라투스트라

입대 후 훈련소에서의 일이다. 내무반 각자의 자리 앞에는 군복, 자질구레한 세면도구 등을 정리할 수 있는 관물대(사물함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가 있는데, 그 앞에는 전투적이거나 교훈(?)적인 표어들이 한마디씩 써 붙여 있었다. 가령 이순신 장군의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내지는 맥아더 장군의 “노병(老兵)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등이 그것이다.
218번, 내 관물대 앞에는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즘이 써 붙여 있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오기를 예상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글귀는 다음과 같다. “조국은 어머니보다 아버지보다도 또 그 밖의 모든 조상들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더욱 숭고하고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소중히 여기고 조국에 순종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훈육장교가 어지간히 꾸며 쓴 글인 줄 알았다. 소크라테스가 결코 하지 않은 말, “악법도 법이다!”가 유신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날조였던 것처럼, 이 글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실지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지인들에게 편지로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쯤 되자 짐작은 서서히 확신이 되어 갔다.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했다. 비단 소크라테스의 앞뒤 말에 상관없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인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튼 진짜 하긴 했다. 배경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들게 한 유명한 재판이 있은 후 한 달간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차분히 명상하는 기간에 그의 죽마고우인 크리톤은 탈출을 권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탈출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면서 첫째, 올바르지 못한 행위(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에 똑같이 올바르지 못한 행위(탈옥)로 앙갚음 할 수 없는 점, 둘째, 자신은 그리스 법에 동의하며 살아왔으므로 그리스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 셋째, 탈옥의 불명예와 함께 언급한 이유와 더불어 넷째로 예의 문제의 말, 즉 조국의 충성을 든다.
여담이지만 후에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실제 그의 말임을 안 나는 박장대소 했다. 21세기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입대한 군대에 2500년 전 소크라테스의 ‘조국’이라니. 설사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국과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조국이 같은 의미라면, 소크라테스는 근대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을 고대 그리스에서 예견한 2000년을 초월해서 산 사람이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무지막지하게 그 둘을 껴 맞춘 교관(조교)의 대담함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희대의 속임수 또한 이 아포리즘에 엄청난 상상을 더한 결과가 아닌지 유추해본다.
아무튼 사후 2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소크라테스가 생각했던 동방(그는 페르시아를 동방의 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보다 훨씬 먼, 동쪽의 땅 끝에서도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살아있다. 예수, 부처, 공자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이지만 이들이 한없이 미화돼서 범접하기 어려운 신적인 모습을 안고 있다면, 소크라테스에게는 인간적인 약점도 많이 보인다. 바가지를 긁는 것에 성이 안차 물까지 끼어 붙는 그의 처 크산티페에게 “내가 크산티페는 천둥소리를 내고서는 비까지 내리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라고 대꾸하는 모습이나, “소크라테스는 그의 대화 상대자들이 잠들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났네. 그는 몸을 씻고 다른 때와 다름없이 그날을 지내고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하네.『향연』”와 같이 2박3일간 연이은 술자리에서 젊은이들을 제치고 끝까지 남아있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국보급 예술품으로 소중히 보관되어오는 예수의 성화나 고풍스러운 부처상과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추남이었던 그의 외모 그대로 조각상들이 적나라하게 전해져온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로 가고 있을 때,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틀린 적이 없었던 한 외국인이 소크라테스를 보더니 면전에 대고, 그가 괴물이며, 그의 몸에는 가장 나쁜 악덕과 열정들이 모두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선생은 나를 아시는군요!’「소크라테스의 문제」”
칸트나 키에르케고르와 같이 재미없고 엄한 철학 선생님의 이미지보다도, 얼렁뚱땅한 옆집 아저씨 같은 털털한 모습이 어울리는 소크라테스지만, 기원전 399년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아니 세계사에 전환점이 되는 재판을 치른다. 다음의 이유에서이다.


 


자고로 역사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죄명이 따라붙는다. 이름 하여 ‘민중선동죄’가 그것인데, 예수나 초기의 마호메트 같은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노예 스파르타쿠스를 필두로 기존의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한 혁명가, 전위적인 예술가 등에게 종종 붙여지고는 했다. 한국에서도 군사정부시절 각계각층의 지도자 뿐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학생들이 이 죄에 의해 사라져갔다. 소크라테스도 이 죄에 걸린다. “소크라테스라는 한 현자가 즉 하늘 높이 있는 것들을 골똘히 생각하는 자이며, 지하의 온갖 걸 탐사하는 자가, 그리고 한결 약한 주장을 더 강한 주장으로 만드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18b-18c)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합니다.(24b)” 그것도 모자라 “죄를 지었음에도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으니, 바로 이것들을 남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19c)” 쉽게 말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선동죄’와, 새로운 신을 믿는 ‘이단죄’를 지었다는 말이다. 죄명으로 봐서는 약 400년 뒤 사형당하는 예수는 소크라테스의 후배쯤 볼 수 있겠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소크라테스가 기소된 죄명은, 당시 그리스인답지 않게 대단히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좋고 나쁜 것에도 일일이 ‘누가 좋은 것인가, 누가 나쁜 것인가’ 구체적으로 따지곤 했던 고대 그리스인답지 않게, 대단히 애매모호하고 석연치 않다는 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선동죄’와 ‘이단죄’는 한 몫 했겠지만, 우리는 실제로 예수가 못 박힌 이유는 따로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 허울 좋은 죄명은 정치적인 쇼를 위한 적절한 구색이었을 뿐,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가 독배를 들기까지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날 델피의 신전에서 ‘소크라테스야 말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겸양인지 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는 그 신탁에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도대체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내 자신이 다소간에 현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터인데, 그렇다면 신이 나를 두고 가장 현명한 자라고 단언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일까?(21b)”라며. 결국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을 사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끌고 마는 지적여정은 여기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사람 저사람 만나며 묻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은 나를 제일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내렸을까?’라며. 상상만 해도 얄미운 모습이지 않던가? 그렇게 해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그리스의 유명 정치가이자 실력자인 아니토스이다.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 사람이 다른 많은 사람한테는 현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특히 자신이 그렇게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제게는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그가 자신이 현명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밝히어 보여주려고 했습니다.(21c)”
정치인들에게 실망한 소크라테스가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시인들이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장엄한 비극시와 신에게 바치는 서정시를 외는 시인들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닳고 닳은 정치인들보다는 똑똑하리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나 그의 바람대로 일은 풀리지 않았다. 늘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의 ‘진짜’ 삶은 꽤나 실망스러운 것처럼, 시인들도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위대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저는 다시금 시인들의 경우에도 오래 걸리지 않고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 또한 아름다운 것을 말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시인들 역시 그런 어떤 처지에 처하여 있게 된 것으로 저에겐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동시에 이들이 시작(詩作)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결코 그렇지 못한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가장 현명한 사람들인 줄로 스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22b-22c)”
실망스러움만 안고 돌아온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공장의 장인들이다. 『국가』에서 생산자 계급, 즉 장인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못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나 보다. 아니면 마음 한편에선 가장 평범한 것이 진리(道)이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故貴以賤爲本”(옛날부터 귀하다는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고 노자께서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장인들의 식견은 소크라테스의 기대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훌륭한 장인들 또한 시인들이 지니고 있는 것과 똑같은 잘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저에게는 여겨졌거니와 ― 이들 각자는 제 기술을 훌륭히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서, 가장 중대한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자신이 가장 현명한 것으로 여기더군요 ― 이들의 이 과오가 그 지혜를 가려 버리는 것으로도 여겨졌습니다.(22d)”
기나긴 여정 끝에 소크라테스가 내린 결론은 신탁이 옳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일 현명한 사람임이 맞다는 말이다. “어쨌든 저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제 마음 속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보다야 내가 더 현명하지. 그건, 실은 우리 중에서 어느 쪽도 훌륭하디 훌륭한 것 이라곤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데도, 이 사람은 자기가 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야, 사실상 내가 알지 못하듯, 알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어쨌든 적어도 이 사람보다는 바로 이 사소한 한 가지 것으로 해서, 즉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이 사실로 해서, 내가 더 현명한 것 같아’라고 말씀입니다.(21d)”
정리해보자.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한 자를 자처하며, 자기에게 가르침을 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문답을 하곤 했다. “같은 시민들 가운데서든 또는 다른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든 누군가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이면 찾아가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서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이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에는, 저는 그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해 줍니다.(23b)” 이러한 넒은 오지랖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분주함으로 해서 이렇다 할 만한 나라 일이나 집안일을 돌볼 겨를도 저에게는 없었고, 오히려 신에 대한 이 봉사로 해서 저는 지독하게 가난한 신세가 되었(23b)”다며 울상 짓기도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스스로 밝힐 경우,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반복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그의 앎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앞서 익히 봐왔듯이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알고 있다고 자처한 사람들의 앎은 결국 ‘참된 앎’이 아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doxa)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들보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나름대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러한 자신의 무지함조차 모르고 있었던 데 비해, 자신은 적어도 스스로의 무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의 지(知)라는 역설적인 상황! 실제로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단어인 ‘아이러니’(irony)란 단어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Socratic eironeia)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현명한 자임을 깨닫고 “인간들이여! 그대들 중에서는 이 사람이, 즉 누구든 소크라테스처럼, 지혜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진실로 전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이니라.(23b)”며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다. 그는 상대가 본인의 무지를 고백할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의 대화가 ‘가오리에 쏘였을 때’의 마비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불평했지만, 결국 그의 집요함에 굴복하여 자신의 초라함과 부족함을 고해바치게 된다. 본인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나 보다. “바로 이 캐물음으로 말미암아 저에 대한 많은 증오심이 생겼는데, 그것도 아주 고약하고 심각한 것들이어서, 마침내는 이로 해서 많은 비방이 생겼으며, 또한 이 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도 된 것입니다. (···) 어쨌든 이렇게 해서, 캐물음을 당한 사람들은 저한테 화를 내며 또한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라는 자는 지극히 혐오스러운 자이며 (변증술을 배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합니다.(23a-23d)”
더군다나 우리가 흔히 산파술(産婆術)이라 말하곤 하는 변증술(dialektike)은 당시에는 금기시 되던 화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무지를 지적함으로서 궁극적인 앎으로 다가간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부정함으로서 더 큰 진리로 올라서는, 다시 말해 부정의 철학을 사유한 것이다. 반면 당시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입법자이자 앎의 주체라고 생각한 것과 같이 자기긍정으로 충만했다. 그러한 ‘긍정의 시민’이었기에 ‘부정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꽤나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리라. “천민이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상부로 올라섰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변증법적인 수법이란 것은 건전한 사회에서는 거부되었다 : 이것은 나쁜 수법으로 간주되었고 조롱받았다. 젊은이들은 그 수법을 사용 못하도록 주의 받았다.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불신되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그러하듯 품위 있는 것들은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권위가 미풍양속에 속하는 곳, 정당화하지 않고 명령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변증론자는 일종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 그들은 비웃음을 사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우상의 황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을 압도할만한 능력을 지닌 영향력이 큰 인물이 적(敵)이 많은 경우 치고 목숨을 오래 연명하는 경우를 보긴 찾기 어렵다. 그 잘난 사람이 싸움을 자주 거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일찍이 손자(孫武子)는 “그러므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서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 했다. 싸우지 않는 것, 나아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현명한 사람답지 못하게, 아니 기소내용처럼 지상의 것이 아닌 ‘하늘 높은 것들과 지하의 것들’을 탐구하는 이데아의 철학자답게 ‘지상’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정통하지 못했나 보다. 이 재판 이후 한 달 뒤 형장의 이슬(정확히는 독배를 마시지만)로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죽음은 당대 사람들의 몰지각과 시기심, 아테네 정치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적대심, 거기에 재판관들에게 아첨하기를 단호히 거부한 소크라테스의 당당한 태도가 뒤섞여 벌어진 필요 이상의 가혹한 처벌이었다. 그러면 뭐하리. 게임은 끝났고, 그는 죽었다.


 


일찍이 노자는 ‘死而不亡者壽’, 즉 죽어도 죽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고 말씀하셨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에는 졌지만, 그의 삶은 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평소 추구하던 바대로 ‘영원히’ 우리들 가운데서 살아있기에. 그를 생전에 비렁뱅이로 조롱했건, 소피스트로 폄훼했건, 혹은 현자로 추앙했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고, 그랬기에 그의 삶은 영웅적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2막 2장에는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서 여러 차례 죽지만, 용기 있는 자는 한번밖에 죽지 않는다.”(Coward die several times in the front, but the people who is brave die only one time)는 말이 나온다. 용기 있는 자의 한번뿐인 죽음이 그를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는 담담한 어조로 죽음에 대해 말한다. 죽음이란 꿈꾸지 않고 푹 자는 긴 밤이라는 것. “그것은 이를테면, 잠자는 사람이 아무 꿈도 꾸지 않을 경우의 수면 상태라면, 죽음은 놀라운 이득일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꿈조차 꾸지 않을 정도로 잠을 잔 그 밤을 고르게 되어, 이 사람이 이 밤과 자기 생애의 다른 밤낮들을 대비해 보고서, 자기 생애에 있어서 이 밤보다도 더 잘 그리고 더 즐겁게 산 낮과 밤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서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비단 보통 사람만이 아니라 저 대왕(大王)조차도 그런 밤들이 다른 낮들과 밤들에 비해 쉽게 셀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시간이란 것도 바로 이처럼 하룻밤보다 전혀 더 길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40d-40e)”
여기에 ‘하늘 높은 것들과 지하의 것들’을 탐구하는 천상(이데아)의 철학자답게 조심스럽게 사후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덧붙인다. 물론 기독교가 등장한 이후에도 수많은 신자들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에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일종의 보상심리에 기반 한 이상, 그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 역시 쉽사리 없애지 못한다. 오죽했으면 고상한 품격을 지닌 토마스 아퀴나스마저도 “천국에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지옥에서 벌어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광경을 바라보는 특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겠는가.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사후세계는, 원한과 증오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기독교의 사후세계에 비해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의 사후세계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재판관들에 대한 증오도, 죽음을 방치한 저 무지했던 그리스인들에 대한 저주도 담겨있지 않다. 천진난만하게도 소크라테스는 단지 그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살다 간 위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사후세계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그리고 호메로스와 접하게 되는 대가로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면 얼마를 지불할까요? 저로서는, 만약에 이것이 진실이라면, 몇 번이고 죽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트로이아로 대군을 끌고 갔던 오디세우스나 시시포스 또는 그 밖에도 이름을 댈 만한 수 없이 많은 남녀를 캐묻는 대가로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면 얼마를 지불할까요? 이들과 거기에서 대화를 하며 함께 지내면서 캐묻는다는 것은 굉장한 행복일 것입니다.(41a-41c)”
전설적인 인물들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소풍, 그것이 아니더라도 달콤하게 자는 기나긴 숙면. 소크라테스의 초인적인 기상이 보여 진다. 그렇다, 괜히 세계 4대성인이 아닌 것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갚게나. 소홀히 말고.(118a)”말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 꼭 사후세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삶(존재)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나’를 그 문턱 앞에 멈추게 하고 죽음을 도망쳐야 할 어떤 것, 그것을 면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 만다. 소크라테스가 범인(凡人)이라 죽음을 외면했다면, 살날도 얼마 남지 않는 늙은이가 법률까지 어기면서 집요하게 살려고 든다고 비난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의 짧은 이름도 죽은 지 몇 십 년 뒤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혔으리라.
소크라테스는 그 문턱을 긍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매순간 불사의 존재로 살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집착, 현존하는 나의 삶, 현존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집착을 던져버리는 삶. 노자가 말한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산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그의 죽음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본 친구 파이돈의 말대로 “우리가 당대에 알게 된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였으며, 그 밖에도 가장 지혜로웠으며 가장 올발랐다(정의로웠다)고 우리가 말해야 할 그런 분(118a)”으로 남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한번’ 죽었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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