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독서기록

cyprus
- 작성일
- 2020.1.21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글쓴이
- 올리버 색스 저
알마
이 책은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색슨이 쓴 자신의 환자들에 대한 임상의 기록과 관련된 글이다. 신경학적인 손상이 있는 다양한 환자들의 기괴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쉽게 듣거나 접할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례로 등장한다. 읽다보면 소설이나 영화의 모티브가 될만한 소재다 싶을정도로 놀라운 환자들의 사례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경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다.
환자의 사례별 증상과 그것에 대한 치료과정을 기술한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환자들 각각의 상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감탄을 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경험한 사례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에서 환자를 환자로만 대하는 많은 의사들과 다르게 환자 이상의 인간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 한사람의 따뜻한 의사를 만나게 된다.
1부 상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신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인한 일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제육감으로 표현되는 고유감각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장애가 아닌 이런 증상의 장애라면 주위에서 인식하기도 어렵고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몸의 모든 움직임을 의지를 가지고 인식해야 움직일수 있는 상태라는게 어떤것일까 계속 상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 아무런 의식없이 움직일수 있는 팔 다리 신체의 부분들이 모두 하나하나 움직일 의지를 가지고 각각의 신체부위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억지로 움직여줘야 하는것이라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크리스티너는 그 부분을 상당한 노력과 연습으로 어느 경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몸을 잃어버렸다고 표현되는 이런 결함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극은 남는다.
제일 첫 사례로 나와있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편은 p선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람과 모든 사물에 대해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그것이 생긴 모양새를 말할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가진 사물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역시 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기에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로 읽혀졌다.
어떤 물건과 사람을 특징으로 분류짓고 그것을 다시 종합적인 판정으로 연결짓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이 문제이고 어떻 기제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것이 다른 사례들보다 불분명하다.
저자가 이 글을 쓸 무렵부터 4년전에 만났던 p 선생은 그후로 진료를 위해 만나지는 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인다.
1980년대 이야기 이기에 그 이후로 거의 30년가까이 흘렀기에 이 병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의 방법이 나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참 그러고 보면 의학과 과학이 지난 한세기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의 메커니즘과 신경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처럼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상실편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바로 두번째 에피소드 길잃은 뱃사람 편이었다.
다른 이야기보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도 가끔 사용되어 지는 기억상실과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더 친숙하기도 하고 더 흥미롭게도 했다.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뱃사람 지미는 1947년 이전의 기억만 살아 있으며 그 이후는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진료의 모습들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바로 메멘토였다.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몇초전의 사실을 까먹는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범인을 찾기위해 단서가 되는 일들을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펜으로 기록한다. 몇초면 찾았던 증거나 기억을 까먹기에 바로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책의 지미도 역시 메모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치명적 오류가 아닐까 생각했던 부분이 주인공이 자신이 단기기억상실이기에 끊임없이 메모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영화전체에서 기억한다는 모순된 사실이다. 사실 단기 기억상실이라면 그 자체도 잊어버리는게 맞는데 말이다.
물론 그렇게되면 영화가 진행이 안되기에 어쩔수 없었을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지미의 모습을 보면 그런 일상의 맥락없는 글들의 파편들으 보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상이나 사건을 그저 기계적으로 늘어놓는 존재, 흄이 말한 분별없는 존재로 전락한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저자의 글에 깊은 공감이 느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려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일이 실제로 있을수 있을까.
2부 과잉
과잉은 말그대로 결손과 결핍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교적 최근에서야 연구되고 고려되어지기 시작한 증상이다.
과잉에서는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가 지나치게 발현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적증세들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틱이나 투렛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증상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윌리엄 톰슨의 이야기는 읽고 있으면서도 웃음이 날 정도로 기가막힌 사례였다.
어떤일이든지 몇초가 지나면 잃어버리는 톰슨은 1부 상실에 등장한 지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점이 바로 이 잃어버린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낸다. 온갖 거짓 혹은 가짜 이야기들을 능숙하게 지어내면서 그 상황을 지나가려고 하는점이 다르다
올리버 색슨은 톰슨의 이런 상태를 관찰하고 진료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다.
'우리는 각자 오늘날까지의 역사, 다시 말해서 과거라는 것을 지니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각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인생이야기, 내면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기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p. 193)
이 부분을 읽으며 '공각기동대'의 메이저가 떠올랐다. 다른사람의 몸에 뇌를 이식한 메이저는 그곳에서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뇌를 이식했기에 과거의 기억이 지워졌음에도 원래의 메이저라고 할수 있을까.
박사가 말한 나를 정의하는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을 삶답게 만들고 나의 정체성을 규정할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수 있으며 나의 의지대로 할수 있고 나의 과거와 현재의 행동들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기억들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이 나이고 그 파편들이 모여 일련의 의미를 갖는 나의 정체성과 삶이 되는것이 아닐까.
그런 일들을 할 수 없을때 그것을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확한 손상부위와 원인을 모르는 p 선생같은 경우와 크리스티나처럼 다발신경염이라는 정확하 병명을 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중 무엇이 더 나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누가 더 낫고 말고 말하기도 힘든 환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우리몸의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1985년에 나온 이 책은 그 이후로 뇌의 병변과 신경학 치료에 대해 얼마만큼 진화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과학과 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에 지금 이 책에 나온 병변들과 증상들의 치료방법이 더 다양해지거나 개선되진 않았을까 싶다.
물론 뇌와 신경의 영역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밝혀진게 미비하기에 아직도 갈길이 먼 미지의 분야에 가깝다는 사실을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도 재미있고 빠른속도로 읽혀지지만 읽고나면 금새 잊혀지고 마는 그런 책이 있는가하면, 읽을때에는 그렇게까지 큰 감동과 재미는 아니었는데 다 읽고 덮고 난 후에 자꾸만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일상에서 생각이 나는 그런 책이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바로 그런 책인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떠오르고 일상의 어떤 모습들 속에서 자꾸만 연상이 되면서 책의 내용이 생각나게되는 그런 책인것 같다.
읽은지 두달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은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이 많이나는 희안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신경과학자의 정성스럽고도 따뜻한 통찰력과 세심함으로 탄생된 이 책은 단지 진료를 하면서 적어 남기는 임상 기록으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다양한 신경손상으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우리 상상밖의 증상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증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뇌와 신경이라는 미지의 영역과도 같은 신비한 과학과 의학의 세계를 일부 들여다보는 것 뿐만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이유와 신경손상의 장애가 있는 이들이 살아갈 이유와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힌트같은 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완치나 새로운 치료법의 시도만 고집하는것이 아니라 장애와 병을 가진 이들이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조언과 시도를 한 올리버 섹스같은 의사를 만난 환자들은 참 운이 좋은 환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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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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