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eunbi
- 작성일
- 2020.2.14
유품정리사
- 글쓴이
- 정명섭 저
한겨레출판
유품정리사! 우리나라엔 생소한 직업이지만, 일본에서는 홀로 살다가 죽는 고독사가 늘어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유품을 정리해주는 관련 직업도 생겨난 모양이다. 이들은 유품 정리부터 상속인에게 잘 상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등 고인이 남긴 무언가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가 보다. 이런 유품 정리업이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하니,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우리의 베이비붐 세대의 시대 차이가 약 10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선점해 나가는 것도 일종의 블루오션이 되리라 생각한다.
『유품정리사: 연꽃 죽음의 비밀』의 무대는 조선 정조가 등극하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임오년 흉사)에 관여한 사람들이 역모 혐의를 받고 전전긍긍하던 무렵이다. 여주인공 화연의 아버지(동부승지) 또한 역모를 꾸몄다는 투서 때문에 곤경에 처했는데, 어느 날 밤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사랑채는 불길에 휩싸인다. 포도청에서는 이 사건을 건성으로 조사한 후 자살로 두루뭉실 넘어가려 하자, 화연은 사건 담당 포교 완희를 찾아가 성의 있는 재수사를 요구한다. 그러자 완희는 문서고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화연에게 '죽은 여인들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는 일'을 제안한다….
여인들의 죽음에 숨어 있는 코드는 여성에 대한 사회와 남성의 폭력이다. 객주를 처분한 과부의 재산을 노리는 일가친척,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수절을 넘어 죽음마저 강요하는 사회, 노름에 미쳐 집안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등바등 애쓰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른 한 여인의 가련하고 비참한 삶(불륜을 저지른 남녀가 밀폐된 방에서 타죽은 사건), 망나니 남편의 물리적 폭력에 숨져간 여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남성적 계급에 억눌려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했던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있다.
아주 다양한 살인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반전과 음모…. 소설은 여인들의 죽음을 밝히는 추리적 요소와 여성의 열악한 사회적 위치, 그리고 거짓과 위선의 군상을 버무려 전개된다.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니 설계가 아주 잘된 소설임은 분명한데, 임팩트는 밋밋했다. 긴장감이 사라진 소설을 읽는 것은 지루하다. 주고받는 대화 중심의 서술과 그를 설명하는 나레이션 기법이 그 원인으로 여겨진다. 대화는 마치 만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공간을 채우는 깊이와 서스펜스가 없다. 얼마 전 읽은 비슷한 유형의 '잠중록'과 비교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긴장감만 불어 넣는다면 참 좋았을 거란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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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