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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아무튼, 하루키
글쓴이
이지수 저
제철소
평균
별점8.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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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만든 세계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시리즈의 책 날개에 새겨져 있는 말이다나를 만든 세계를 소개하고, 그 세계를 양분으로 내가 만들어 낸 지금의 세계를 보여 주는 아무튼의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고 재밌게 읽고 있다.

그 시리즈 중 『아무튼, 하루키는 근래 나를 가장 조급하게 만든 책이었다.


어떤 책을 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삶의 곳곳에서 그 책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 될 때가 있으신지.”

이렇게 시작하는 첫문장의 강렬함은 비단 하루키 소설이 아니더라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공감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나는 지잉(!)을 느꼈고 서둘러 읽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저자가 어떻게 처음 하루키를 알게 됐고, 사랑하게 됐고, 중요한 인생의 순간마다 그의 문장들이 저자와 포개졌는지를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쩌면 직업의 향방을 결정해 버릴 수도 있는 대학 진학에서 그저 하루키의 문장을 누구의 중개도 없이 스스로 읽고 싶어일문학과를 선택했다는 순수한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이 그러한 낭만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교환학생 시절의 짠내 가득한 아르바이트, 투박한 연애,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의 시간 등으로 차례차례 풀어 내면서 그 역시 보통의 삶을 살아왔음을 말해 줘서 좋았다. 에피소드마다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는 하루키의 문장 덕분에 저자의 감정에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날의 송정역 맥도날드 에피소드는 하루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야구장에서의 결심만큼이나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그 문단을 읽으며 내 마음도 지잉- 지잉- 여러 번 울렸다만약 내가 10대였다면이 책을 읽고 번역가를 꿈꿔 보았을 것 같다어디로 가야 할지무엇이 돼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시절에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는 문장들에 몸을 의탁하다 보면 분명 어디에든 도착해 있으리라는 확신을 이 책을 읽으며 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고, 지나간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임을 이 책에서 배운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어린 시절부터 야무지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던 저자가 하루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여기에 도착했다는 이 결말이 나는 무척 무척 마음에 든다. 고독한 직업을 읽으며 앞으로 이 역자의 번역서는 믿고 읽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하루키를 통해 저자가 번역가로서 어떤 마음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지, 해 나가려고 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공유해 줘서 더욱 신뢰가 생긴다.


하루키를 자원으로 다룬 책은 무수히 많다. 하루키 스스로도 에세이를 통해 자신에 관해 많은 말을 했다. 그러므로 하루키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은 그러한 책들에서 해소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아무튼, 하루키에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 책은 하루키를 사랑한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하루키의 문장들과 함께 재구성한 그만의 세계이니까. 이 책은 번역가 이지수의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그간 하루키와 얼마나 애틋한 시간을 보내 왔는지, 그가 빠지면 성립되지 않았을 순간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해 보게 된다. 그러므로 책은 '아무튼, 하루키'여야만 했다고, 저자에게 흠뻑 매료된 나는 감히 변호하고 싶다. 저자가 나눠 준 인생의 장면들이 너무도 하루키적 모먼트이고, 눈에 그려질 듯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돼 있어서 나는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하루키의 모든 작품 중에 여전히 최고라며 몇 번이고 언급한 저자의 최애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찾아 읽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 인생의 반환점이 여기서 시작되기라도 할 것처럼, 모르는 기대를 품고 :=)

 

[내가 주운 책 속의 문장들]

- 『노르웨이 숲』의 첫 문단이었다. 누구도 거치지 않고 내게로 곧장 도착한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울창하고 거대한 숲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 숲에는 탐구해야 할 전나무와 잣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빼곡한데 나는 아직 비늘잎 하나도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20쪽)

 

- 몇십 년 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과 재회라도 한 양 내 가슴에서는 그리움과 반가움과 즐거움과 애틋함이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먹고살기 위해 마음에 쌓아둔 담이 손쓸 도리 없이 무너지며 거기서 흘러나온 것들이 내 발을 적셨다. , 너무 좋아.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나는 이 일을 해야 해. (70쪽)

 

- 하루키는 나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을 안겨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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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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