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0.3.9
살갗 아래
- 글쓴이
- 나오미 앨더만 외 14명
아날로그(글담)
내가 만약 이와 같은 글을 의뢰 받는다면, 나는 콩팥에 대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콩팥을 주제로 글을 쓴 애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이다)는 구약성서에 서른 번 이상 나오는 콩팥에 대해,
‘신성함과 감춰진 위치 때문에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멋있게, 그리고 아주 추상적으로 쓰고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콩팥은 어린 시절 내 삶을 완전히 지배했던 장기다. 내가 어느 시점부터
거기에 문제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멀리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의사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각오하셔야 할 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분명하게
굿판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기도 했다. 한참 전에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그때는 내가 어쨌는지 모르고, 지금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안에 앉혀 놓았던 부모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아니 고마워한다. 그리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병은 재발했다. 중학교 1학년 한참 친구들과 매일 농구를 하고, 다음 해에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전국단위체육대회(전국소년체전)에서 개막식에 선보일
매스게임 연습으로 수업도 단축시키는 와중에 그 병이 와 버렸다. 이번에는 어떻게 그 병이 오는지,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낱낱이 인지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마루에 뻗어버리는 자식을 보고 부모님은 아뿔싸 싶어 병원에 데려갔고, 아마 예전과 똑 같은 진단명을 받아 들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을
권하는 의사의 말을 나는 집요하게 부정했다. 매일 학교에 갔고, 매일
병원에 들렸다. 매일 주사를 맞고, 매일 소변을 받아 검사를
했다. 김치 한 조각을 먹지 못하고, 계란에도 소금을 치지
못했다. 어느 날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갔는데 아무도 없는 집안의 냉장고를 열었을 때 시큼한 신 김치
냄새에 나도 몰래 꺼내 한 조각 입에 넣고는 눈물을 흘렸었다. 일년 여가 지나자 이제 그만 병원에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투병기는 끝났다. 그때는 신장병이라고
했고, 지금 다시 표현하자면 콩팥염. 그러나 그보다 더 정확한
병명은 나도 잘 모른다.
『살갗 아래』는
살갗 아래에 존재하는 우리 몸의 장기들에 대해 영국의 문인들이 하나씩 맡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적이고, 어떤 사람은 과학적이고, 어떤 사람은 어원을 따지고, 또 어떤 사람은 개인사를 쓴다. 개인의 경험을 쓴 글 중에서 ‘피’와 HIV에 관한 글은
감동적이고, ‘눈’에 관한 글에서는 백내장(cataract)의 어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인상 깊지 않아도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루고 있는 장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에게 귀란, 나에게 간이란, 나에게 눈이란, 나에게
코란, 나에게 폐란, 나에게 대장이란, 나에게 뇌란, 나에겐 자궁이란… 특히
나에게 콩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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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