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
  1. 꿀짜의 맛있는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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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배빗
글쓴이
싱클레어 루이스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 (7)
잔향


 통에서 꺼내든 이 책은 꼭 가벼운 벽돌 같았다. 노랑색이 예뻐서 읽고 싶다가도 손에서 두툼한 두께가 가늠이 되면서 내게 잠깐 왔다가는 책이 되면 어쩌나 싶어 읽기를 주저했다.

 

책을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얼마 전에 이 책을 소개했다. 고전이라 어렵다는 생각에 흘려들을 수 있었겠는데 그날은 이 책의 작가 루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또렷이 들렸다. 그의 아버지와 형들은 의사다. 의사가 되는 것이 당연한 집안에서 루이스는 홀로 글을 쓰는 일을 했다. 후에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게 되는데 그런 영광스러운 일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아버지와 그 가정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상처로 그의 평생이 불행했고, 끝 또한 안타깝게 마쳤다. 그의 안타까운 삶의 배경을 들으며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루이스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사실적인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1920년 배빗은 아내와 세 자녀를 가족으로 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부동산중개인을 하고 있으며 그의 삶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다. 가정 내에서는 배빗은 감정적이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도덕적인 삶을 지향했으며 자신이 속한 단체 어느 곳에서나 성실했고 열정적이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엔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책의 초반부터 거의 끝까지 배빗은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시달린다. 능력 있고, 완벽한 집을 갖추었으며, 교회, 파티나 협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그다. 도대체 그의 불편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독자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에게서 눈에 띄게 보이는 말과 행동은 의외로 가부장적이고, 위선적이며, 속물적이다.

 

이 책을 보려면 당시가 어떤 시기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략적으로 미국의 1920년대는 호황과 불황이 있던 시기였고,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대립했으며, 보수와 진보간의 특히 노동자와 사업자의 관계 갈등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배빗]이란 책의 배경으로 당시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배빗과 주위의 모든 이들은 호황을 즐기며 단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그 모습을 저자는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배빗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수성가한 스타일이다. 그렇게 성장하며 자신의 지위나 평판이 상위층 사람들과 같이 나아지길 기대했고 그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간다. 가문이 좋고 상류층 위치의 이들에겐 열등감을 느꼈고, 자신보다 상황이 낫지 않은 이에겐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해도 속으로는 비웃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처음엔 내가 왜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중년 남성 배빗의 상황이 여성인 나는 이해가 안 됐고, 갈등과 번민 속에 빠지며 추태를 보이는 그의 모습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책을 고전읽기책으로 선정한 라디오 방송의 작가들은 대체로 여자들이고 젊을 텐데 왜 하필 이 책이었던 건지, 그들은 이 책에서 독자들이 무엇을 보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소개했을까? 나는 계속 왜 이 책인지 질문했다.

 

배빗은 친구 폴을 통해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지대가 없어졌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찾으려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정리했다. 더 이상은 남이 보는 시선과 남들이 쥐어주는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시각을 믿고 행동해 보기로 한다. 나는 배빗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남들의 협박에도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려 했던 모습에서 배빗의 용기에 감탄(?)했다. 한편으로 배빗은 그동안 갖고 있던 도덕적이고, 성취지향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솔직해져서 남들이 탈선으로 볼만한 행위들에도 빠져든다.

 

그의 짊어진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깨닫기까지 얼마나 그가 시대와 상황의 꼭두각시로 답답했을지 헤아려 봤다. 그런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선택을 따라 살아가기에 중년의 길은 순탄하지 않다. 도시의 힘이란 이름으로 한 인간의 존재를 억누르고 냉정하게 내던지는 사회현실을 루이스는 아래 문장으로 잘 표현했다.

 

방랑자를 길들이는 도시의 힘은 엄청나다. 도시는 거대한 산이나 해안을 침식하는 바다처럼 냉소적이고 침착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의 이면에 본질적인 목적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배빗은 가족을 등지고 산간 오지의 조 패러다이스와 함께 지냈고, 진보주의가 되었으며, 제니스에 도착하기 전 날 저녁까지만 해도 자신이나 도시가 더 이상 예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지 열흘 만에 그는 언제 떠났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p.384-385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고, 유지해야 할 사업이 있었다. 자신을 버티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배빗이 주관을 따른 대가는 실제로 자신의 팔을 자르고 귀를 베어가는 것처럼 그와 가족, 그의 지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이전의 배빗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던 배빗은 마지막에 다른 대안으로 자신의 주관을 표현했다.

이건 책에서 확인하시길.

 

내가 흔히 알고 있는 권력을 가진 이들,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어하는 정치인들, 보수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들도 배빗과 같이 오랫동안 설키고 엮여서 끊을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이다가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까지 이르러 그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들의 의견과 같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감시의 눈을 발동하고 철저히 소외하며, 최악까지 몰아세우는 한 무리들의 잔인한 행위가 소름끼쳤다. 그런 모습이 지금이라고 없을까? 우리가 잘 아는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그 어느 때보다 누리고 있다고 하나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모습은 있다. 나와 다른 이들과는 절대 나누고 싶지 않는 자신의 파이를 쥔 그 사람들이 있다. 권위를 향한 그들의 탐욕과 억지 그리고 비상식적인 부분들은 여전하다. 루이스는 그런 면들을 잘 통찰했고, 그 사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은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나도 배빗과 같은 중년에 들어섰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배빗을 통해 볼 수 있다. 누군가 내 선택과 신념에 끼어들어서 내 자유가 박탈당했을 때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무언가가 선택되었을 때, 그리고 그게 인생으로 지속되었을 때 인간은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여도 어느 누구에게도 의심과 판단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빗을 통해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것이 나의 삶을 통제하기 전에 나 자신을 잃지 않고, 표현하는 행위들을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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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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