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mento

검혼
- 작성일
- 2020.4.3
[eBook]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글쓴이
- 강인욱 저
흐름출판
역사학과 출신이다 보니 고고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없었다. 인디아나존스나 보물찾기는 결국 범죄의 현장이거나 고된 노동의 결과임을 안다. 발굴 현장에 참가(본인은 참가라 했지만 아무리 얘기를 들어봐도 단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의 말로는 순전히 육체노동이라 했다. 그리고 철저한 계급이 있는데 고참이고 관리자일수록 발굴도구가 가벼워진다고 했다. 친구처럼 초짜나 아르바이트생은 삽을, 전문가일수록 붓이나 솔 같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내가 직접 참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실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군복무를 한 친구도 비슷한 증언을 했으니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과장을 했을 수 있다. 어쨌든 고고학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는 고된 육체노동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경주나 로마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발굴 현장은 험한 곳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당연한 결과다.
학생시설 답사 중에 유적 발굴현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기억이 있다. 희미하지만 그때 느낌은 마치 재개발 현장 같았다. 자연의 모습은 파괴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규칙성은 있었다. 네모 반 듯 한, 건물이나 유적이 있었던 흔적에 따라 땅은 참호와 같이 가지런히 헤집어져 있었다. 저자는 고고학은 이 파괴의 행위가 있어야만 유물을 찾을 수 있고, 과거의 사람들을 불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도, 고고학도 멸망과 파괴를 공부하지만, 고고학이 좀 더 직접적이다. 파괴와 멸망의 흔적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고학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학문이(p.642)”라 정의한다.
고고학과 역사학은 서로 유기적인 학문이다. 사실상 서로 떼어낼 수 없다. 개인적으로 역사학보다 고고학이 더 흥미롭다.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상상력’의 범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새로운 발견 앞에서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p.547)”지만 “실제 유물을 앞에 놓고 있으면 없는 상상력도 일어나기 마련(p.547)”이라고 고백한다. 그만큼 상상력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크다. 따지고 보면 영상보다 문자의 빈 공간이 더 넓다. 문자보다 유물의 빈공간이 더 크다. 빈 공간의 넓이만큼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많다. 역사가 그렇듯 고고학도 유물과 유물 사이를 더 그럴싸한 상상력(가설)로 채워나가야 한다. 물론 그 사이를 역사학보다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신기술들을 통해서 메워나가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고고학이 역사학보다 더 어려운 학문일 수밖에 없다. 상상력이 많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만큼 간극이 크다는 말이다. 간극만큼 오랜 시간을 헤매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연구하지만 미래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고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p.629)”이라고.
역사학과 고고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결국 “고고학이 보물찾기가 아니라 유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소중한 깨달음(p.649)”을 얻는 길이다. 고고학이 그러하듯 역사학도 그러하다. 결국, 우리가 어떠한지를 배워가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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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는 모은 땅 속에 있어야 하지만 머리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훨훨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꿰고 있어야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끊임없이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는 만능학자이기도 하다. p.7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p.18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p.20)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21
무덤은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죽음이 다시 태어나는 황홀한 경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가장 꺼리는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무덤을 만들고,(p.54) 그들을 기억하는 제사를 마치 축제처럼 지냄으로써 고대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무덤에는 이처럼 인류의 생존 비결이 담겨 있다. p.55
무덤 하나하나는 곧 내세에서의 복을 기원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산 자가 남긴 마지막 사랑이다. p.55
로버트 던바는 요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사회적인 시간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을 통한 요리의 사용은 이렇게 복합적으로 인간의 진화에 작용하고, 인간의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p.96
재를 보면서 불을 느낀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적은 마치 타고 남은 재와 같다. ... 지금 남은 것은 불을 태운 흔적과 재뿐이다. 하지만 그 불의 흔(p.99)적을 가진 흙들을 발굴하다 보면 그 위에서 벌어진 수많은 의식, 요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p.100
중요한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 안의 뜨거운 열기를 꺼드리지 않는 것이다. 불과 재는 둘 다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내 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질 때, 재 속을 헤집듯 자기 안을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p.103
이 자그마한 뼈로 만들어진 인삼 채취(p.144) 도구는 발해사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단서이다. 역사를 보면 발해는 추운 극동 변방 지역의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산악 지역이다. 이런 곳에까지 왜 발해가 진출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바로 경제가치가 높은 물품들(인삼, 모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사소한 유물들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p.145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p.171
음식에 대한 탐닉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p.293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 과정은 중요한 요소였음을 지적한다. 특히 로버트 던다는 이러한 행위를 ‘그루밍’으로 규정짓고 인간 역시 서로를 어루만지고 느끼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유대를 키웠으며, 여기에 음악과(p.351) 언어가 더해지면서 현대 인류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p.352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p.391
문화재 조사의 핵심은 ‘불가역성’, 즉 한번 발굴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p.404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고고학도 그러하다. 과거의 유적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인들의 모습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당연시하고 발굴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후대에 물려줄 유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p.406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여 이득을 얻으면 그 욕심에 편승한 또 다른 개인이 등(p.426)장한다. 그 개인들이 모이고 모여 집단이 되고,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맹목적인 광기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이념으로만 집단 이기주의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다. p.427
전쟁과 고고학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현(p.429)실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지층의 구조를 파괴하여 그 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 전쟁은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부여한다. 고고학은 땅을 파헤쳐서 자연에 숨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는 점에서 유적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승자가 그 이후의 세상을 재편하듯이 유적을 파괴하고 그 속의 유물을 꺼내서 과거를 다시 재편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로 닮아 있다. p.430
너무나 많은 전쟁의 과정이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일방적으로 서술되었다. 고고학을 동원해서 그 과정들을 객관적으로 남겨 놓는 것이 필요하다. 수백만 명이 쓰러져간 그 과정을 어떻게든 기록해서 전하는 것은 우리 고고학자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p.471
우리 주변에 사라지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생겨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때문에 우리는 소비할 뿐, 남기거나 간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어져야 하는 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법이다. p.481
“문명이란 어둠과 혼돈의 깊은 바다위에 떠 있는 얇은 얼음장과 같다.” - 위너 헤어초크(독일 영화감독) p.483
인류 역사의 원동력은 과거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에 있었다. 지리나 환경의 변화를 거부하고 지나치게 이전의 사회나 문화에 집착을 했다면 현생인류는 완전히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p.484
“조상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예푸(중국 인문학자, 작가) p.507
고고학자들의 어떠한 주장이든 유물에 기반이 되어야 한다. 고고학자에게 진실은 유물에서 시작해서 유물로 끝난다. 고고학자들은 새로운 발견 앞에서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실 실제 유물을 앞에 놓고 있으면 없는 상상력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물을 두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고학 유물의 가변성에 있다. 문헌을 주로 연구하는 역사와(p.546) 달리 고고학이 대상으로 하는 유물들은 매일 새롭게 쌓인다. 언제나 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두 개의 발견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p.547
고고학자에게 명성은 마치 헤엄치는 고래와 같다. ... 너무 오랫동안 수면 밑에 있어서도 안 되지만 수면 위에 계속 머물러서도 안 된다. p.547
많은 사람들은 고고학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를 밝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목적은 역사 기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p.57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눌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p.627
고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629
기술이 발전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p.641)어야 할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현대의 고고학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는 것이다. 고고학자로서의 안목과 식견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본연의 목적인 ‘과거의 유물을 통해 사람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에 더 집중해 사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연구하는 고고학의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p.642
고고학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생존을 거듭하며,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느낄 수 있는 지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고학은 이어진다. p.642
고고학이 보물찾기가 아니라 유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소중한 깨달(p.649)음을 여러분께서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펴냅니다. p.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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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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