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밀크티
- 작성일
- 2020.4.11
아무도 하지 못한 말
- 글쓴이
- 최영미 저
해냄
이 책은 시인 최영미의 산문집『아무도 하지 못한 말』이다. '최영미' 하면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떠오른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세상에 맞서기보다는 눈감는 편이 쉬운 듯한 일 앞에서 당당하고 용기 있게 나서는 모습을 보며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페이스북 인기글을 읽는 기분으로 그녀의 생각을 읽어나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최영미. 1992년《창작과 비평》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외 여러 권의 시집과 장편 소설, 산문집을 출간했다. 시「괴물」등 창작 활동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 중심 권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켜 성 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서울시 성평등대상을 받았다.
시로는 못 담은 말, 소설로도 다 못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산문(散文)이다. 흩어진 문장. 마구마구 흩어진 문장들. 지난 사오 년간 여기저기에 기고한 글들과 SNS에 올린 글들을 모아, 책상에 앉아 쓴 글들과 침대에 누워 허공에 지껄인 문장들을 모아, 내 영혼의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모아 다시 책을 엮는다. 세상과 넓게 소통하고 크게 부딪쳤던 내 삶의 궤적이 여기에 있따. 저 이렇게 살았어요, 이게 나라고 들이대려니 조금 민망하다. 나의 가장 밑바닥, 뜨거운 분노와 슬픔, 출렁이던 기쁨의 순간들을 기록한…… 시시하고 소소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시대의 일기로 읽히기 바란다. (작가의 말 발췌)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작가의 말 '그래도 봄은 온다 폐허에도 꽃은 핀다'를 시작으로, 1부 '푸르고 푸른', 2부 '아름다움은 남는다', 3부 '시간이 새긴 흔적', 4부 '조용히 희망하는 것들', 5부 '세상의 절반을 위하여'로 이어진다. 다시 시를 쓰며, 페이스북이 좋은 이유, 후회, 심심풀이, ㅆ 받침, 페이스북 효과, 묵은 쌀, 오래된 마루, 화려한 스카프, 공범들, 대박 나세요!, 커피, 선물, 겨울 외출, 법은 법조문에만 있지 않다, 간판, 인터뷰, 지루한 자와 오만한 자, 응급실, 일요일 오전, 도착하지 않은 삶, 쓰다 만 소설, 문단 내 성폭력, 새 시집, 변신, 위로, 긴 싸움의 끝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짤막한 호흡의 산문을 읽는다. 시인의 산문, 즉 시가 아닌 산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시보다는 산문이 접근성이 뛰어난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어 어느 때든 마음 내키는 만큼 읽으며, 그 책에 실린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산문만한 것이 없다. 특히 최영미 시인은 페이스북을 해서 그런지 짧은 글을 많이 담아놓아서 이 책을 통해 마음을 전해준다. 안그래도 시인의 글보다 뉴스에서 더 많이 보았던지라 이 산문집으로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제가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ㅆ 대신 ㅅ 받침이 많아 눈에 거슬린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일반인은 그렇게 많이 실수해도 되지만 작가는 그러면 안 되지요. (30쪽)
글을 읽으며 공감되는 발언이 나오면 반가워진다. 시가 아닌 에세이에서는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나에게도 ㅆ 는 자꾸 실수하는 받침이다. 예전에는 ?shift 키를 힘껏 눌러야 ㅆ 을 쓸 수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AS 센터에 가서 고쳐달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너무 쉽게 ㅆ 을 누르게 되어 '했따' 처럼 입력되곤 한다. '앞으로 과거형 받침 안 쓰게 현재와 미래형 이야기만 해야 하나'(30쪽)라는 글을 보며 웃음이 났다. 나도 그럴까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가장 궁금했던 '미투'에 대한 부분도 이 책의 곳곳에서 보인다. <세상의 절반> 와<문단 내 성폭력> 을 읽으며 뉴스에서 보았던 이야기에 대한 속사정을 듣는 듯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행할 용기가 대단하다. <미투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에 적은 몇 마디 말도 인상적이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겼지만, 남자와 여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날을 위해 더 전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싸움은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가 될 것입니다." (203쪽)

이 책을 읽으며 시인 최영미의 짤막한 글과 생각을 전해듣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을 읽다보니 시인 최영미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는 듯하다.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시로는 못 담은 말 소설로도 다 못 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산문'이라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역시 에세이에는 자신을 좀더 드러내야 독자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최영미가 들려주는 시대의 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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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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