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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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글쓴이
임현정 저
페이스메이커
평균
별점9.2 (42)
흙속에저바람속에

악인(樂人) 베토벤의 인생을 듣다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를 읽고 또 듣고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은 악성(樂聖) 베토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트레이드마크인 헤어스타일과 청각 장애, 그리고 도입부의 "빠바바밤, 빠바바밤~"만 들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운명>교향곡의 작곡가 정도가 전부였음을 고백해야겠다. 나이가 들어서도 클래식은 큰 마음먹고 들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던 나지만, 작년부터 커가는 아이의 클래식 감수성을 길러주는 차원에서 유명한 클래식 작품들을 손가는대로 아이와 함께 듣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때마침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을 읽고 또 들으면서 정말 여러모로 의미있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든다.

    평소 클래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중압감과 더불어, 악성이라 불리는 인물의 곡은 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일종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기존의 베토벤에 대한 전문가적인 서적들과 달리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연주자의 시선으로 베토벤을 조명한 책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럼에도 저자의 화려한 경력을 본다면 과연 얼만큼의 차별성을 가진 책일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 앞날개에서 자칭 '베토벤 스토커'로 그가 쓴 편지 3천 페이지를 섭렵했다는 저자의 소개를 보자마자 일말의 의심은 금새 기대로 바뀌게 되었다.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에 나오는 18~19세기 베토벤의 편지글을 통해 마치 오늘날의 SNS와 같이 주변 사람,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소신과 주장을 펼치는 그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의 인생이 그대로 드러난 일기장과 같다.(5쪽)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베토벤이 만든 한 곡 한 곡의 작품 속에는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젊어서부터 청각을 잃어갔는데, 그의 시련은 이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피아노 연습을 했고, 형제자매는 물론 어머니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모차르트가 소환되고 둘의 대조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읽혀졌다. 동시대를 주름잡았던 두 사람이지만, 모차르트는 베토벤과 달리 작곡가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고 타고난 천재성으로 신동으로 불리며 아주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둘의 말년은 역전되어 모차르트는 묘지 관리인만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묻힌 반면, 베토벤은 2만여 명의 추모객이 모여 성대한 장례식을 치뤘다는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피아노에 앞에 앉은 순간, 원수처럼 행동하던 그들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친절한 언어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격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해도 음악의 본질 자체는 이타적이라서 사람들을 위로하며 치유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40쪽)

 

    저자는 베토벤의 성장과정에 자신이 인종차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 유학 초기 시절을 투영한다. 외롭고 고된 나날이 연속되던 어느 날, 음악 시간에 쇼팽의 '에튀드 작품10 제5번'을 자유롭게 연주하고 그 동안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또래 아이들의 찬사를 받게 된 것이다. 저자는 단 몇 분의 음악이 9천km만큼 벌어진 문화와 언어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해준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이 책에는 베토벤이 남긴 수많은 소나타와 교향곡에 관한 음악적 지식과 함께 관련된 일화들도 담겨져 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대목은 프로메테우스와 베토벤의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것으로 유명한 신화 속 인물이다. 이러한 모티프에 영감을 얻은 베토벤이 1801년에 작곡한 발레곡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비단 이 곡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듣노라면 정말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것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음악을 선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이 발레곡의 '지혜의 불' 모티프를 <영웅>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피아노 소나타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하며 그의 곡들을 듣는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점점 심해져가는 청각 장애로 인해 과거 편지를 통해 신을 원망했던 베토벤이 훗날 일기장에 기록한 다음 글을 보면서 그와 프로메테우스가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우주는 원자들의 우연한 재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가장 이성적인 지능에 기반을 둔 확고한 힘과 법칙이야말로 이 불변의 질서의 근원이며, 이것이야말로 우연이 아닌 필연에 의해 원자들로부터 흘러나왔다. 우주의 구성에 담긴 질서와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신의 존재를 보여준다.(55쪽)

 

 

    이러한 베토벤의 비범한 모습 외에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겠다. 당시 귀족의 특권 의식에 반발심을 갖고 있었던 베토벤은 눈 앞에 황족이 지나가도 모자를 벗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어보이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괴테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베토벤이 최애(가장 사랑)하는 곡, <영웅>교향곡이 원래 그가 평등의 기치를 수호할 것으로 기대했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었으나 황제에 올라 군림하는 모습을 보고 철회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가치관과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또 베토벤의 제자들이 당대에는 꽤 유명했으나 오늘날은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도 들어 알고 있던 체르니가 바로 베토벤의 제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퍽 흥미로웠다. 이 밖에도 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인지 베토벤은 메모광으로도 유명했는데 반전은 그가 악필이었다는 사실이다.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은 테레제 말파티라는 여성에게 바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베토벤의 악필 때문에 곡 이름이 테레제(Therese)가 아닌 엘리제(Elise)로 잘못 알려졌다는 설을 들으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베토벤이나 음악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의 지론과 소신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구축하고 있는 음악 세계의 근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린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프로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비단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곱씹어도 좋을 것 같다.

 

    개성이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함이다. 사실 일부러 개성을 추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성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나만의 빛을 있는 그대도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102쪽)

 

    겸손과 겸허는 결코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서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되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모두의 덕분이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128쪽)

 

 

 

 

    요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특히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올해 기획된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를 읽고나서인지 더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를 빌어 베토벤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책을 읽어나갔던 시간이 나의 지친 일상에 휴식과 위안을 가져다 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껏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그를 어렴풋이 떠올렸다고 한다면, 이 책을 통해 음악을 위해 세상과 분투하고 자연과 인간을 누구보다도 사랑해마지 않았던 악성(樂聖)이기 전에 악인(樂人), 즉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음악을 듣는다는 것 역시 누군가의 인생을 듣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끝으로 베토벤과 저자에게 음악은 인생 그 자체이기에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음악뿐만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곰곰이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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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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