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20.4.21
결 : 거칢에 대하여
- 글쓴이
- 홍세화 저
한겨레출판
책을 붙잡고 있던 며칠 동안 마음이 고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일인가, 내가 이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은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실천에는 무지무지 느리고 둔한 내 의지를 무엇으로 변명하려는 것인가, 이러면서도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가, 책은 무엇인가, 책을 왜 읽는가...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 때문에, 알고 있는 답에는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답에는 새삼스럽게 반응하는 자신이 구차하고 민망하여 많이 고달팠다.
내가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짐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읽고 싶었고 읽어야 했고 읽고 나니 당연히 부끄러워졌는데, 왜 계속 부끄러워하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건가 반성도 해야 했다. 반성만 하면 뭐하나, 반성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쳇바퀴 도는 나의 물음과 회한은 작가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것만 같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글은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을 나무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표현이 작가 자신에게만 던지는 나무람이 아니라는 것을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 독서 상황을 좀 더디게 만들었다. 칭찬이 아니라 나무라는, 나태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글의 목소리가 글을 읽는 속도를 자꾸만 붙잡았다. 그래, 읽기만 해서 뭘 하겠는가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게 이 책만큼 관심이 일지 않은 적도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게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지. 내가 나를 다스리는 일만 해도 이토록 깊고 아득한 것을. 작가는 이를 자신을 짓는다는 말로 표현했다. 나를 지을 자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나없이 고르게 자신의 삶을 지을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맞이하자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거칠게 보이는 표현 안에서 배어 나오는 속 깊은 울음소리가 어찌나 사무치고 처절한지 고개를 돌릴 수도 책장을 덮을 수도 없기만 했으니.
아주 사소한 참여 한 가지를 하려 한다. 매달 오늘 날짜에 장발장 은행에 극히 적은 돈을 넣는 일(은행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문을 닫을 때까지).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 이 일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내가 유일하게 갚을 수 있는 보답이라고 여기면서. 이런다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지만.
24 나를 잘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과 비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28 개인주의는 본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조건 아래 각자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타인의 자유와 권리, 이익을 침해하면서 자기만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려 하는 이기주의는 개인주의와 전혀 다르다.
133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 주기 때문이다.
144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단언컨대, 전쟁과 폭정이다.
1664 수구 세력이 질서나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이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81 잡초는 없앨 수 없다. 다만 뽑을 수 있을 뿐이다.
202 타자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이해하려면 나부터 독립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혐오가 만연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 과정에서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곳에 머물려 해서는 안 된다.
223-224 올바른 정치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국민이 겪는 고통과 불행을 덜어주어야 한다. |
결 : 거칢에 대하여 |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