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그냥그렇게
- 작성일
- 2020.5.6
평일도 인생이니까
- 글쓴이
- 김신지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오랜만의 에세이다.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평일도 인생이니까’ 라고 해서.
평일을 활용하는 방법이 기재 된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ㅋㅋㅋ 그런건 없다.
그냥 김신지 작가님의 일상 에세이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글이 무척 따듯하게 와닿는 에세이는 정말 오랜만이다.
작가의 글에 선동되어 읽으면서 격해지거나 욱하는 그런 것들은 전혀 없으며.
문장들이나 단락들이 너무 좋아 수시로 메모하게 만들어주었다.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따스하게 생각했던 글귀들이 뒤로 갈수록 자연스레 손발이 오그러들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글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 아닌 보여주기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경우 일 것이다.
그럴때는 정말 읽고 있는 사람도 힘이 든다.
이 책 중간에 나온 글에서, “이런 건 나도 하겠다” 라는 부분이 생각나서 순간 머뭇거려지지만,
이런건 나도 하겠다. 라는건 절대 아니다.
남들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어하는 글이라는게 보여지다 보니 읽는 사람에게도 그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건 내가 하고 싶은말은, 이 책은 전혀 그런게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너무 좋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해지면서 작가님의 에피소드에 피식 웃음을 같이 남기면서 술술술 읽혔다고 해야 하나?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길즈음엔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모처럼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작가를 ‘발견’ 했다.
‘아싸~아’
p.34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p.66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어린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것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을 채워 주는 사람으로 자라, 내 행복은 내가 책임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어른으로 사는 기쁨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 이다.
p.93
모든 공짜 티켓은 기한 만료 직전이나 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전엔 부러 눈에 띄게 하려고 지갑에 넣어 두거나 책상 앞 코르크 보드에 꽂아 놔도 투명 티켓처럼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p.99
어렸을 때, 나는 늘 궁금했었다.
왜 내 인생에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내가 보는 이야기들은 모험으로 가득 차 있는데, 왜 나는 비슷비슷한 찌개에 밥을 먹고 엄마가 걷으라는 빨래를 걷으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조금 더 자라 독립을 하고 서울로 온 뒤에는 왜 내 일상엔 서정이 없는가 생각했다.
심심하고 차분한 단편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다.
유리병 속 보리차처럼 정갈한 일상.
아침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골목길을 내다보며, 오후엔 나무가 많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단골 카페에 들러 잠깐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일상을 갖고 싶었다.
물론 내 일상은 숙취에 찌들어 겨우 눈을 뜬 채 얼룩덜룩 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머릿내가 밴 이 베개를 언제 빨아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었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삶이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넉넉지 않을 때도, 왜 그들은 궁상맞지 않은가가 늘 궁금했다.
내 삶은 눅눅한 냄새가 나는데 그들의 삶은 볕에 내놓은 이불처럼 기분 좋은 생활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p.106
그냥 좋아지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관심을 가져야 좋아진다.
그게 방이든, 일상이든, 삶이든.
잠시 머무는 곳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사는 대신 일상에 소소한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그것은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인생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하면 그리 작은 차이는 아니다.
하루 꼬박 여덟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책상을 자기답게 꾸미는 사람이 있고, 2년 계약의 전셋집을 자기 취향대로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P.159
요즘 내게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이미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는 시간.
여러 곳에 가는 것보다 한 장소에 제대로 머무르는 일.
거기 좋았잖아, 또 가 보자,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좋다.
다시 가서 다시 좋아하는 일이 좋다.
읽었던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다른 곳에 밑줄을 긋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 좋다.
그런 독서는 꼭 천천히 하는 식사 같다.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밥을 몰래 말아 급하게 넘기는 게 아니라, 한 숟갈을 제대로 뜨고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키는 식사.
그럴 대에야 비로소 이 책에서 느낀 것들을 내것으로 소화시키는 기분이 든다.
P.170
회사에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자, 하루아침에 혼자만의 아침 시간을 갖는 차분한 사람이 되었다.
그저 환경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동안 스스로를 나무란 세월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 후로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다.
눈을 뜨면 거실로 나와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5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를 내려서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으로 오늘 날씨가 어떤지, 집 앞의 나무들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공원 초입에 오늘은 어떤 트럭 장수가 와 있는지 바라본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마음속으로 찬찬히 정리하고, 저녁엔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용히 머물 때의 나를, 나는 비로소 좋아할 수 있었다.
알람이 아닌, 내 의지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P.177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내가 그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잘하고 싶어서였다.
잘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못하는 모든 상황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거기엔 사람들에게 잘 뵈고 싶은 마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나를 한심해 할 것 같은 마음, 쓸모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 나를 보며 저런 게 작가라니 실망할 것 같은 마음, 그러니까 그 자리에선 나를 어떤 식으로든 평가할 거란 두려움이 있었다.
동시에 그런 나를 가장 혹독하게 평가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성적인 게 아니라 그건 어쩌면 대단한 자의식인지도 몰랐다.
p.193
그 시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은 “이런 건 나도 하겠다”라는 농담이었다.
‘이런 것’을 결코 하지 않을 사람들이 쉽게도 던지는 말.
작은 빵집에서, 수공예 상점에서, 누군가 공들여 만든 것을 들었다 놓으며 하는 말들.
거기 담긴 한 사람의 오랜 시간과 해묵은 초조함과 그럼에도 여전히 만드는 일을 놓지 못하는 마음을 전혀 보지 않는 말들.
재능이나 성공 같은 건 생각보다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이런 건 나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지 않는 일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말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따지고 성공 여부만을 재고 있을 때, 그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든다.
P.209
누군가의 어떤 점이 부럽다는 건, 내겐 없는 무언가를 ‘결핍’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낫다.
건강한 몸매가 부러우면 운동을 하고, 지식이 부럽다면 책을 읽는 식으로.
남을 의식만 하고 앉아 있으면 제자리에 머물지만, 그것을 나에 대한 집중으로 돌리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뗄 수 있다.[
P.235
빵집에서 엄마 생일 케이크를 고르려다 한참을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아.. 저번에 엄마가 맛있다고 했던 게 고구마 케이크였더라, 생크림 케이크였더라?’
무슨 케이크가 좋을지 속 편한 고민을 하는 줄로만 알고 있던 친구가 옆에서 거들었다.
“뭘 고민해. 그냥 엄마가 좋아하시는 걸로 사.”
그러니까.. 그걸 모른다는 게 내 문제야...
내 마음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생일을 챙기려고만 할 뿐 정작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무언지도 모르는.
더 나쁜건 다음 해에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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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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