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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
- 작성일
- 2020.5.15
번아웃 레시피
- 글쓴이
- 이누카이 쓰나 저
벤치워머스
이 책은 실용적이면서도 장식적인 책이다. 실용적인 이유는 독자가 정말로 '번아웃' 된 상황에서 실낱같이 남은 체력으로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보았을 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어떤 요리라도 할 수 있도록 가벼운 수준으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요리책이 실용서 분류에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든 요리책이 실용적이지는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리에 전혀 소질과 흥미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감히 실용적일 수 있는 수준으로 정말 쉽다. 어느정도나면 전자레인지를 켜고 끌 줄만 알면, 그리고 마트에서 생면을 사서 삶을 줄만 알면 이책의 50% 레서피는 다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조금 아쉬운 것이라면 일본 번역서이기 때문에 모든 식재료가 익숙하지는 않다는 점인데, 한국 식재료중에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일본 식재료를 구하는 것도 아주 어렵지는 않은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장식적인 이유는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디에 놓아도 귀엽고 깜찍하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은 다 한다고 생각한다. 책장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장식 기능만 하고 있는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의 표지는 아주 본격적으로 대놓고 장식 기능까지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쓴 폰트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포동포동한 느낌의 이 폰트는 배고픈 나에게 어떤 배부름과 풍족함을, 요리를 만들기 전부터 안겨 준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우아하거나 품격있는 요리책이 아니라 실제로 힘이 하나도 없는 상황, 혹은 요리에 큰 소질이 없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말투로 요리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번아웃된 상황이라면 요리를 우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뾰족하게 들어오는 문장과 단어들은, 요리할 힘만 겨우 남아있는 독자들의 옆구리를 찔러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실용서의 관점에서는 이 역시도 문장이 발휘해야 하는 힘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그릇 째로 요리를 하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설거짓거리는 그릇과 스푼이 전부!' '고기를 섞을 때는 계량 스푼을 그대로 사용하면 편리하다!'
체력이 없는 독자를 위해 정말 최소한의 힘만 있으면 된다고 구체적으로 얘기 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캔을 딸 수 있는 체력 뿐!'
번아웃 상태인 독자를 위해 요리하다가 쉬는 시간도 알려준다. '스위치만 눌러놓고 빈둥거리자!' 등등. 사실 이 책의 문장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이 미묘한 느낌표는 (비록 일본어 번역투 이기는 하지만) 번아웃된 독자에게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짧고 굵고 강렬한 외침으로까지 들린다. 그래서 이 느낌표 문장을 계속 읽다보면 어느새 식재료를 사게 될 것이고 부엌 앞까지 가게 될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엇비슷한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서두에 '미리 준비해 두면 좋을 식재료들'을 목록으로 보여줬더라면 하는 것이다. 재료를 미리 사두고 언제든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제 어떻게 번아웃될지 모르므로 미리 식재료를 준비해 두면 요리할 수 있는 체력을 다른 곳에 안쓰고 요리에 더욱 집중해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읽다보면 몇가지 주요한 재료는 금방 외우게 되니 미리 마트에 가서 사두는 것 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번아웃된 독자들의 부엌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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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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