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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글쓴이
한승태 저
시대의창
평균
별점8.3 (64)
mate3416

https://blog.naver.com/mate3416/221974532728

 

  지방직 공무원은 여러 이유로 여러 때에 비상근무에 동원된다.

   무턱대고 피어나는 봄꽃과 대책 없는 벚꽃이 눈물겹게 아름다운 봄의 시절은 산불예방 집중기간. 눈물 찔끔.

   한 줌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모든 볕을 빨아들여 황홀한 빛을 뿜어내는 가을산이 지독하게 고혹적일 때는 축제기간. 열흘 밤낮 꼼짝없다. 곤혹.

   선거기간 주말이면 공보물 우편작업을 하고, 담벼락에 벽보를 붙인다. 선거일엔 당연히 선거사무 종사자니 부재자 투표를 한다. 다음날은 공들여 붙인 현수막 떼기. 투표 안 하는 사람 밉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이 돌면 3교대 근무다. 도로변에 작은 초소를 만들고 오가는 차량을 소독하거나 보초를 선다. 언젠가 조류독감 근무에 지쳐갈 무렵 한 직원이 말했다.

   “그냥 직원 한 명당 닭 한 마리씩 사!”

   우리 지역에서 사육하는 닭은 500마리, 직원도 딱 그만큼.

 

   닭들을 모조리 사버리고 싶을 즈음 네 살배기 작은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어떤 소랑 어떤 돼지는 어쩌다 고기가 됐어?”

   언제쯤이면 아이의 질문에 궁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사람들이 먹으려고 고기로 기른 거야.’

   차마 내지 못할 대답만 머리에 가득했다. 정작 나온 대답은 역시나 그러게.”

 

 

   『고기로 태어나서를 아이가 읽지 않았으면 좋겠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라야겠다.

   저자 한승태를 노동작가, 그가 쓴 책들을 노동에세이라 설명하고 싶다. 꽃게잡이 배부터 농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뛰어들어 일을 하고 글을 썼다. 산전수전 오랜 나이일 것 같으나 그는 젊다. 어쩌면 영원히 젊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해 할 줄 알고, 진실을 구하고, 더 많은 이들이 불편해 하게끔 발언하는 사람은 나이 들지 않는다.

   그가 영원히 멸종되지 않을 동물들의 사육지를 찾아 간다. 노동자로서다. 멸종열외 동물은 닭, 돼지, 개다. 생물학적 우성, 환경학적 적응력 따위는 고려치 않았다. 인간이 그들을 먹는다는 것, 그 하나로 불멸할 저들이 고기로 길러지는곳으로 독자는 들어가야만 한다. 피하지 말자, 숨을 깊게 들이 마셔라.

 

   “뱃속에 알이 몇 개나 더 남았을까?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닭고기의 경우편을 시작한다. 배우 문소리가 연기했던 잎싹이의 말이다. 답을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같던 배우의 목소리와 잎싹이의 큰 눈망울이 떠오른다. 저 문장 하나로도 이미 마음이 편치 않다.

 

   우선 사실로부터 시작해보자.

   가로 세로 50cm, 높이 30cm의 전자레인지만한 케이지에 농구공만한 닭 네 마리가 산다. ‘구기고 찌그려뜨려도 터지지 않기때문에 동거를 한다. 깃털은 머리와 몇 군데 듬성한 것이 전부, 맨살이다. 고기로서의 가치가 없는 닭들은 목을 비틀어 숨을 끊는다. 빠르고 간단하게 비튼다. 다음, 다음.

   갓 태어난 병아리는 밝은 레몬색으로 레몬만하다. 삐약삐약 쫑알거리면서 동전만한 날개를 파닥거린다. (이건 좀 잔혹한데) 엉덩이에 알껍데기가 붙은 녀석들도 있단다. 기저귀를 찬 레몬색 삐약이. 좋은 고기로 자라지 못할 병아리들은 살려두지 않는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뒤뚱삐약거리는 그것들을 양손 가득 잡아채 포대에 담는다. 산 채 눌러담긴 병아리들을 먼저 쏟아 붓고 그 위로 쓰지 못할 달걀들을 쏟는다. 공포에 질린 삐약 소리는 점점 묻히고 아직 남아 있는 소리도 그냥 죽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살아남은 레몬들은 씩씩하게 자라 세,네 마리씩의 동거닭들과 케이지에 들어가면 된다.

 

   돼지라고 다를 것 없다. 새끼를 낳는 용도로만 삶이 허락된 (누가 누구에게 생을 허락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돈은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케이지에서 일생을 산다. 분만하러 갈 때와 돌아올 때만 땅을 밟을 수 있는데 저자가 일한 농장의 경우 그 왕복 거리는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주기를 1년에 2회로 보았을 때 모돈은 1년에 40분을 걸을 수 있다.

 

   개는 짬을 먹는다. 식당과 급식소들에 나온 음식쓰레기다. 플라스틱과 유리, 일반쓰레기들과 뒤섞인 짬을 먹고 고기로서 가장 적정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 적게 나가면 죽어야 하고 많이 나가면 쓰레기를 먹지 못한다. 케이지 철망에 서 있어야하기 때문에 발이 파괴되어도 땅에 내려주면 움직이지 않으려 온몸으로 저항한다. 땅을 걷는 것은 죽으러 가야할 때뿐이기 때문이다. 전기충격기로 한 번에 죽기도 하고 목매달려 버둥거리다 죽기도 한다.

 

 

   책을 읽은 지 오래인 지금도 어렵기만 하다. 읽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지금껏 지니고 살았던 비겁함에 대한 직시를 외면하고파서였기 때문이라 인정한다.

   ‘개의 경우차례에서는 그만 읽을까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충분하지 않으냐는 자문이 고개를 들었다. 불편한 것에 대한 회피와 외면은 이제 그만 두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 해서 동물보호운동에 참여한다거나 채식주의자가 될 계획은 없다. 식용동물 사육을 업으로 하는 이들 모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치킨을 먹고 버거를 주문한다. 갈비찜이 나오면 밥을 더 많이 먹고 치즈돈까스가 맛있다.

   하지만 나는 알아버렸다. 스무 해를 살 수 있었으나 알맞은 고기가 되기 위해 단 한 달만을 살아야 하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 숨을 삼키고 뱉지만 고기 제조과정에 맞추어 생이 깎이고 목이 비틀리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 딛고 설 다리가 있으나 죽음으로 끌려갈 때만 땅을 밟을 수 있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제 나는, 불편하다.

   맥주는 과자와 먹어도 충분하고 버거도 좋지만 샌드위치가 마음 편하다. 갈비찜과 돈까스에 입맛이 동하긴 하지만 꼭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소망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도깨비풀처럼 아무에게나 달라붙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성공이다. 편치 않아졌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점잖은 척 다 떼고 그냥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한다 해도 굳이 고기를 찾아 먹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렇게고기로 자란 뭔가를 씹어 삼켜 몸 안에 담고 싶지 않다.

   어쩌다 고기가 되었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여전히 궁색하지만 조심스레 들려줄 이야기들이 생겼다. 이제 어떻게 해보려는지도 들려주고 싶다.

 

   덧붙여 고백하자면, 배운 대로 하지 않으면 불편해 하는 큰 아이가 동물복지 달걀을 고집했을 때 배가 넘는 가격에 갈등한 적 있었다. 앞으로는 달걀을 살 때 아이를 데려오지 않겠다고, 아이 앞이니 이번만 이 비싼 달걀을 사겠다고 생각했었다.

   2019년 동물복지농장은 산란계 15%, 육계 5.9%, 양돈 0.3%, 젖소 0.2%였다. 축산업을 전공해 동물복지농장을 운영 중이라는 한 농장주가 너무 힘이 들어 권하질 못하겠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당신의 달걀을 사겠다. 엄마와 동생에게도 애원하겠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 달라. 그렇게 닭에게 땅을 밟고 모이를 쪼아 고개 들어 삼킬 수 있게 해 달라. 내가 동물복지 달걀만을 사겠다. 미안하지만, 포기하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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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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