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0.6.15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 글쓴이
- 정승규 저
반니
현직 약사인 정승규는 작년에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를 내고 올해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냈다. 제목만 보면 앞의 책은 과거 이야기 같고, 뒤의 책은 앞으로 만들어야 할 약 같지만 정작은 그런 구분은 아니다. 둘다 인류를 구한 약들이고(일부를 제외하고), 또 앞으로도 필요한 약들이다. 예를 들어,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에서 소개한) 항생제가 인류를 구한 약이란 것도 분명하고, 항생제 내성 시대에 앞으로도 새로운 항생제가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또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항바이러스제는 코로나-19 시대에 앞으로 당장 필요한 약이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린 약이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 느낌은 다른데,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의 약들이 대체로 치료하는 질병이 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역사적으로 더 유구한 것들이다. 반면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에서는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의 질병에 대한 약들을 다룬다. ‘현대적’인 느낌이라는 것은, 다분히 느낌일 뿐이긴 하지만, 피임약이라든가, 탈모 치료제, 조현병 치료제, 항우울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유전자 치료제 같은 것들은 과거라면 그것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거나, 약으로 치료하거나 다스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약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이라는 느낌은, 그냥 느낌만이 아니라 경향까지도 포함한다.
이 약들을 소개하는 패턴도 앞의 책에 비해 많이 정리되었다. 질병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 약을 처음 개발하게 된 경로(대체로는 우연이지만 과학자들의 집념이 돋보이는)를 소개하고, 그 다음 거기에서 파생된 약들을 알린다. 특히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역시 처음 약을 찾아내는 단계의 이야기다. 다른 질병에 쓰이던, 혹은 다른 질병에 대해 개발하던 약이 효과가 없음이 판명난 이후에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에서 쓴 비아그라그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에 나오는 처음에는 혈압약으로 개발되었다가 탈모약으로 재발견된 미녹시딜 같은 것도 있고, 최초의 조현병약이 된 클로르프로마진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 단순히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세심한 관찰력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집요함이 따라야 그런 행운(? !)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약은 여기의 약들 말고도 많다. 이를 테면, 여기서 치매 치료제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지나가지만, 그렇게 본격적으로 언급하지 못할 상황인 만큼 반드시 개발이 필요한 약이고(물론 수백 건의 예비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당장에는 코로나-19 치료제가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가 앞으로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건강하게 살다가 갈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약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것은 어쩌면 씁쓸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런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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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