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1. NON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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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글쓴이
사토 겐타로 저
사람과나무사이
평균
별점8.2 (148)
Alice

 

같은 시리즈로 나온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식물>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시리즈이지만 작가가 달라서 조금 망설이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괜한 우려였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작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질감이 없었고 또 다른 방면으로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평소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책에 나온 의약품들은 세계사를 바꿀 만큼 인류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친숙한 물질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질병과 방역, 피료에 대한 관심사가 대단한 요즘에 읽기 대단히 적합한 책이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싸워온 질병의 역사와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서 구해 줄 의약품의 발견까지 이 과정 하나만으로도 전쟁사가 아닐까 싶다.


대항해 시대에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페스트도 결핵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그 이름조차 듣기 힘든 '괴혈병'이라는 질병이었다. p.41

의약품의 발견과 활용은 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몸에 노래기를 문지르는데, 노래기에 뱀이나 해충이 가까이 하지 못하는 벤조퀴논을 방출하기 때문에 방충제로 사용한다. 불나방 유충은 기생 파리가 알에 기생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먹지 않는 독당근을 섭취한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소똥,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양털, 돼지 귀지가 의약품 목록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질병은 악마가 몸에 침투한 현상으로 악취나 더러운 물질로 쫓아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연물질을 약으로 사용했지만 쓰레기 약 악습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청나라는 정부 고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아편의 포로가 되었다. (···) 아편에 한 번 맛을 들인 사람은 열이면 열 충성스러운 단골이 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제품이라 아무리 강력한 대책을 세워 시행해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p.102

진정 세계사를 바꿨다고 할 만한 약은 비타민 C와 모르핀이다. 대항해무렵 골칫거리는 괴혈병이었다. 괴혈병은 비타민 C부족이 원인이며, 한 군의관이 과일과 채소를 활용한 예방법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선원들이 이 식단을 거부하자 간부용 식단에만 메뉴를 올리는 심리방법을 이용했는데, 곧 식단을 제공해달라는 선원들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비타민 C가 없었다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핀은 의약품 중 가장 오래 사용된 것이다. 차를 얻기 위해 청나라에 아편을 팔던 영국은 결국 아편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청이 서구 열강에 무너진 것은 동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르핀과 마취제는 전쟁 중 부상당한 병사의 고통을 완화주켜 주었다. 물론 전쟁에서 싸운 병사들의 희생이 더 컸겠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 덜 자주, 빨리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손 씻기를 실천하고 나서 몇 개월 만에 12퍼센트였던 제1 산과 사망률은 3퍼센트까지 내려갔다. 더 나아가 속옷과 의료기구까지 철저하게 소독하자 사망률은 0.5퍼센트까지 뚝 떨어졌다. 의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통쾌한 승리였다. p.140

마취약에 관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도 재밌다. 성 기능 장애가 있던 루이 16세는 15살에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했지만 후사를 치르지 못했다. 결혼 8년 후인 23살에 겨우 수술이 시도되었지만 그 때는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화려한 파티에 정신이 팔린 뒤였다. 결혼 당시 루이 16세가 통증 없는 수술을 했거라면 역사가 달라졌을거라는 저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 성 기능을 고친 루이 16세가 반대의 스캔들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흥미로운 사례가 많다. 세균 감염을 연구하던 리스터는 페놀을 발견한 덕에 소독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구강 청결제로 알려진 리스테린은 리스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헤로인은 약을 먹으면 영웅적인 기분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44년 6월에는 '사상 최대 작전'이라 일컬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행되었고, 페니실린은 기적의 약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후송된 부상병들은 페니실린 덕분에 가스 괴저와 패혈증에 걸리지 않았고, 운 나쁘게 병에 걸렸더라도 무사히 회복했다. 기존의 전장에서의 상식이 모조리 뒤집혔으며, 플레밍은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p.199

보통 한 두 챕터 정도는 지루할 법한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밌다. 의약품 특허 선점에 대한 연구자들의 치열한 싸움도 재미있고, 플레밍의 페니실린처럼 정말 아주 보기힘든 우연의 발생이 인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고나니 흥미롭다. 일본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필리핀 출신 여성 사건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대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엄청나게 속출했을 때 타 지역 사람들의 냉정한 차별 행위가 떠올랐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것이 낭설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이런 이유로 혐오발언을 한다는 점도 씁쓸했다. 괴혈병, 말라이아, 매독, 에이즈 모두 인류사에 있어서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질병을 퇴치할 의약품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 이후 인류는 또 한 번 어떤 변환점을 맞이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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