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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esoojung
- 작성일
- 2020.6.23
은희
- 글쓴이
- 박유리 저
한겨레출판
한 사람의 삶을 글로 읽어 내려가는데 이렇게 온 몸이 긴장돼 힘이 들고 마음이 지칠 수가 없었다.
일평생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어떤 이의 죽음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입술을 꽉 깨물게 할 일인가.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사실 속에 감추어진 수많은 사건, 기억, 억울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준이라는 태생부터가 아픔 덩어리인 이 사람의 마음이 더이상 상하지 않기를, 슬픔이 대를 이어 삶이 망가지지 않기를, 그의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읽으며 기도했다.
한 사람의 탄생과 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에게는 그저 매일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일 테지만,
‘준이의 탄생’, 그리고 ‘은희의 죽음’은 그들을 둘러싼 미연, 병호, 주태석 검사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글을 읽으며, 진실을 함께 파헤치고, 그 아픔과 파장을 같이 감내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과 슬픔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책을 다 읽고도 이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준이가 진실을 다 아는 것이 과연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약 13년 전 내 소중한 친구의 부모를 찾으러 한국의 입양기관을 돌며 경험한 그 때의 절실함이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되돌아 보면 보통의 삶을 살고자 했을 텐데 괜히 알아 버린 사실들이 남은 생에 피할 수 없는 부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은희의 기억에서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곳으로 떠나서 한 여자와 사랑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낳은 한 남자가 되기를. 네가 문 젖꼭지의 촉감과 살결, 냄새를 기억하지 않기를, 너를 낳은 여자와 네가 잉태된 그 날이 기억되지 않기를" 바랐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말이다. 그를 지금까지 키워준 부모 밑에서 그저 남들만큼 보통의 가족처럼 살기를 바라는 게 그의 인생에는 더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은희와 513명의 이름 모를 은희의 슬픔이 가실 때까지... 준이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여 건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보통 사람처럼 살게 될 때까지...
이 책을 안고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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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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