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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3416
- 작성일
- 2020.6.30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글쓴이
- 오수완 저
나무옆의자
https://blog.naver.com/mate3416/222016685129
<책방 하고싶은 면서기>
독서는 몸으로 통과해야하는 시간의 체험이다.
근육과 신경을 이용해 종이와 활자를 만져야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무게를 알맞은 거리와 각도로 들어야한다. 때마다 책장을 넘겨주어야 할뿐더러 한쪽 엉덩이나 팔이 아플 수 있으니 종종 자세도 바꿔주어야 한다.
이미 싹튼 사랑과 욕망은 결국 숨겨질 수 없는 법이고 그것을 품은 마음을 내보이고 싶은 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좀 변태 같은데?’라는 예상반응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나는 손바닥으로 책의 표지를 쓸어만지고 손가락 하나에 가벼운 책장을 얹은 채 책을 읽는 이 접촉에서 (가끔은 에로틱함마저 담긴) 스킨쉽을 체험한다. 특히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쓰다듬게 되는 책이 있는데 종이에 닿아있는 나의 몸을 통해 실재하는 책과 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형태 없이 존재하는 무엇의 주고받음을 분명히 감각한다. 여하튼 독서는 동적인 신체활동이다.
또한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시간의 체험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문장을 읽는다 해서 독서를 공유한 것은 아니다. 함께 읽은 그것이 실수처럼 찍혀있는 쉼표 하나라 할지라도 당신과 나의 독서는 같을 수 없다. 당신이 읽은 쉼표는 누구에게도, 어떤 비율과 모양으로도 나누어질 수 없는 당신만의 쉼표이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으로, 자기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자신만의 세상을 오롯이 체험한다는 것, 이보다 더 근사한 삶을 다른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아마 이보다 더 정확하고 황홀한 독서의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만해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모처럼 책 읽는 마음이 ○○○○.
어떻게 표현해야 정확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 아무리 고민해도 찾을 수가 없어 빈자리로 두는 수밖에 없겠다. 애송이 아마추어로 보이겠지만 딱 그 정도 신분이니 (썩 내키지는 않지만) 구구절절 늘어놓기로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고, 밤에 읽기 좋아 좋았다. 반성하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고, 책이 주인공이어서 좋았고, 이야기 속 사람들이 책을 좋아해서 좋았다. 하얀색 표지와 남색빛 도는 어느 블루의 제목이 좋았다. 픽션을 읽는데 논픽션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좋았고, 상상의 이야기가 너무나 픽션다워 좋았다. 소설 속 도서관이 실재할 것 같아서, 그곳 어디에 앉아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좋았다. 그 밖에, 자잘하고 세세하고 유치한 이유들로 좋았다.
이쯤하고 책을 소개해보자.
호펜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이란 이름의 도서관이 있다. 컨셉 때문인지 도서관은 재정난으로 폐관될 위기에 처하지만 여전히 찾아오는 이들이 있고 정말 어디에도 없을 책들이 기증되어 서가에 꽂힌다.
이야기는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연과 기증받은 희귀본에 대한 설명이 계속해 교차되는, 그러니까 사람과 책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구성이다. 등장인물들은 도서관을 찾아오는 이유부터 차림새, 말투, 책을 읽는 모습 등 모두가 제각각이다. 등장책들 역시 소설부터 역사, 수학, 과학, 종교, 요리, 게임 등등 이용자 못지않다. ‘이런 사람도 다 있네.’ 하며 읽다보면 ‘이런 책도 다 있네.’ 하게 된다.
과하지 않은 상상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사가 좋다. 특히 작가가 직접 스케치한 일러스트는 이야기에 재미와 볼륨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이번 여름휴가는 호펜타운에서 머물며 도서관에 앉아 마을사람들과 지하 서가의 특별한 책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꺼운 마음으로 이야기에 빠질 수 있다.
○○○○으로밖에 써놓을 수 없는 다른 이유는 (이런 류의 형용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지만)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분홍과 하늘과 밝은 회색 같은 파스텔의 작은 뭉치들이 마음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도저히 한 단어로 뱉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뭉치들은 아마도 이야기와 스케치에 담긴 책과 사람에 대한 작가의 애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조금씩 유별난 사연의 마을사람들과 어디에도 없을 별난 책들은 보통의 모습을 한 다수와 조금 다르지만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다른’ 모습이 ‘조금’ 있다 해도 ‘같은’ 부분도 ‘많이’ 있기에, 혹은 다르고 같은 것이 얼마나 있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세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그리하여 그는 사람과 책 모두 오래 읽어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는, 책을 읽고 사람을 읽는 것은 똑같이 흥미로움과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기쁨과 모험이라는 믿음을 이야기 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이야기를 끝맺은 후 작가는 후기를 덧붙였다. 주제도 교훈도 없는 이 글이 현실의 문제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누구도 읽지 않으려 할 것 같았다고. 그에게 나의 독서후담을 전하고 싶다.
문제로부터 멀찍이 있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는 늘, 문제들에 파묻혀 있으니까요. 그리고 문제들은 늘, 너무나 난해하고 가짓수가 많으니까요. 오지 않을 것까지 걱정해 예상문제를 풀고, 이미 한 차례 겪어 보낸 기억까지 되살려 기출문제를 풀고 있죠.
조금 다른 사람들과 책들을 품는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습니다. 세상 곳곳에 있을 더 많은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져 제 마음이 몽글몽글하니 참 좋네요.
당신이 미뤄두었던 이 글을 결국 세상에 낸 것처럼 나 또한 그럴 수 있는 이야기를 지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추신.
우리집 꼬마들이 그린 그림과 (그린 것 같은) 글자들을 모아 책으로 엮으려 합니다. 서스펜스 없는 군사소설과 상상을 뒤엎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흥미진진한 SF소설 한 편씩입니다. 호펜타운의 그 도서관에 꽂아주실 수 있을는지요.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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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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