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1. 책을 읽다! - 문학

이미지

도서명 표기
죄와 벌 (하)
글쓴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1 (115)
지나고

『죄와 벌 (하)』는 아래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총 6부 중 4부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라스꼴리니꼬프는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조심스럽고 미심쩍은 눈으로 뜻밖의 손님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스비드리가일로프 씨라고? 이게 무슨 헛소리야? 그럴 리가 없어!」마침내 그는 당황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외침을 듣고도 손님은 놀라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나는 두 가지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첫째로는 오래전부터 당신에 대해,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좋은 소문을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직접 만나고 싶었고, 둘째로는 당신의 누이동생,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한 가지 계획을 어쩌면 당신이 도와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만일 내가 아무런 소개도 없이 혼자서 댁의 동생을 찾아간다면, 동생은 선입견 때문에 나를 마당으로도 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도와준다면, 일이 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못 생각하셨군요.」라스꼴리니꼬프는 그의 말을 잘랐다.     (p. 409)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등장도 등장이지만, 캐릭터가 꿈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추잡한 제안으로 아브도찌아 로마노브나를 모욕하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라스꼴리니꼬프를 닮았다. 스비드리가일로프도 우리에게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라고 말한다.(p. 419) 결정적인 공통점이라면 죄를 짓고도 그 심각성을 모른다는 게 아닐까. 꼰스딴찐 모출스키의 작품 평론 ‘5막 비극으로서의『죄와 벌』’에서도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라스꼴리니꼬프의 어두운 분신으로서 그의 옆에 서 있다, 라고 표현한다.(p. 864) 분명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정하기에는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소냐는 누가 봐도 천사의 모습으로 라스꼴리니꼬프를 품는다. 그러니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으랴. 아무리 라스꼴리니꼬프가 위대해도 예외일 수는 없을 듯. 


그의 베개 밑에는 복음서가 놓여 있다. 그는 기계적으로 그것을 손에 들었다. 이 책은 소냐의 것으로 그녀가 그에게 라자로의 부활을 읽어 줄 때 들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유형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그녀가 그를 신앙으로 괴롭힐 것이고, 복음서에 대해서 말하며 그에게 책들을 강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한 번도 그 주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고, 그에게 복음서마저 권한 적이 없었다. 병들기 직전에 그 스스로가 이 책을 부탁했기 때문에 그녀가 말없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는 책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책장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녀의 신념이 이제 나의 신념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그녀의 감정, 그녀의 갈망은······.>

그녀 역시 그날 종일 마음이 설레었고, 밤에는 다시 앓아눕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서 자신의 행복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7년, <겨우> 7년! 행복이 시작되고 있던 이 무렵과 또 다른 순간들마다 두 사람은 기꺼이 이 7년을 7일로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삶이 거저 그에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 삶을 사기 위해서 아직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는 앞으로 위대한 행적을 쌓아 보상해야 한다는 것도 미처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완결되었다.     (p. 809~ 810)


『죄와 벌』이 이것으로 완결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많다. 꼰스딴찐 모출스키의 작품 평론 ‘5막 비극으로서의『죄와 벌』’에서도 대담한 진실을 지혜로운 덮개로 가려야 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p. 874)


그러나 그는 이를 <막이 끝날 무렵에야> 서둘러서 부주의하게 해치워 버리고 만다. 병이 완쾌된 다음, 주인공은 감옥에서 소냐의 발아래 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랑한다.     (p. 874)


소설은 주인공의 <갱생>에 대한 막연한 예견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예견은 약속일 뿐이지 독자에 의해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 우리는 이 <경건한 거짓말>을 믿기에는 라스꼴리니꼬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p. 875)


우리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나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전기를 시작함에 있어 나는
다소간 의혹에 빠져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비록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를 나의 주인공이라 부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전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들이 불가피하게 튀어나올 것임이 미리부터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즉, 당신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당신은 왜 그를 주인공으로 골랐는가? 그가 무슨 그럴듯한 일을
했단 말인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유명하단 말인가? 독자인 내가 왜 그의 인생의 사실들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믿음사』p. 11  작가로부터)


뜻 보면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이런 의혹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꼰스딴찐 모출스키의 분석대로 지혜로운 덮개로 가리긴 가린 모양이다. 곱씹을수록 만만찮은 소설이다. 이 책을 고른 죄로 벌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에 따른 성취감도 크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지나고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3.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3.1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3.12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3.12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3.8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3.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95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56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6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