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유(심리치유에 관한)

이하라
- 작성일
- 2020.7.10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글쓴이
- 아른힐 레우뱅 저
생각정원
세상에서 오랫동안 나쁜 일을 겪은 사람은 좋은 것이 있어도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또한 정말 오랫동안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자신조차 스스로를 믿는 것이 힘들어진다. / p249
'조현병을 이겨낸 심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찬가'라는 카피가 책 제목 아래 저자와 역자 이름 위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삶의 찬가라는 느낌도 인식도 들지 않는다. 그저 싸늘한 폭발 같은 침투가 인생 깊이 드리워졌던 한 소녀 그것을 이겨낸 한 여성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하지만 전혀 삶을 노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찬가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본인도 2008년 조현병... 당시에는 정신분열이라고 불렀었던 조현병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 중간에 약 복용을 끊고 지내다 정서적 격동이 심해져 재입원을 하고 다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책에 묘사된 아른힐 레우뱅의 증상은 조현병 치고도 중증으로 보일 정도도 극렬한 상태로 여겨졌다. 나 역시 발병 초기에 동반자살을 하자는 네이버의 지식인 글을 보고 댓글을 남겨 채팅을 주고 받다가 모여서 동반자살을 기도한 적은 있지만 아른힐 처럼 자해와 자살기도를 빈번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아른힐은 자기주도적이며 자의식이 강한 편에 속하는 듯하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생을 견디다가 선도수행과 탄트라요가 수행에 빠져들었다. 그 과정에서 규범과 어긋나게 여러수행을 중첩하고 조합한 수행을 이어나가다 선도에서 주화입마라고 하는 정신적 육체적 편차(부작용)에 빠져 조현병을 갖게 됐다. 조현병 진단 이후 나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복용하는 약의 영향으로 의식은 명료하지 않았고 육체의 통제력도 점점 잃어가는듯 했다. 하나의 좀비가 되어간듯 살았다. 매일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외롭고 서러웠지만 죽음을 시도할 정도로 능동적이거나 깨어있지 못했다. 그러다 약의 복용량을 줄이고서부터 점점 의식을 되찾기 시작하는듯이 느껴졌다.
얼마나 다양한 증상이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는지를 보고, 이런 증상을 지닌 사람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면 조현병이 정말 병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다양한 여러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개념인지가 점점 불확실해진다. / p185
아른힐의 말처럼 조현병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그 깊이도 다 다르다. 병원을 몇차례 입원하며 환자가 되어 다른 여러 환자들과 함께 지내며 느낀 건 약 복용으로 증세를 완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으로 망가지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였다. 나의 경우에는 지능이 현격히 떨어져서 체감 지능이 50%이상 하락 한 것으로 느껴졌다. 약을 과량으로 복용할 때는 곰셈, 나눗셈도 장애를 느낄 지경이었다. 정상적인 지적 기능이 불가능했다. 약을 끊고 지냈던 1년 남짓의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는 다시 약을 복용하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듯 했다. 하지만 다시 약을 복용하고 있는 현재는 다시 대뇌에 제한을 설정한듯 표현능력과 논리적 사고에 제약을 느낀다. 2016년 6월 이전의 1년 남짓한 기간의 리뷰와 포스트들과 2016년 9월 이후의 리뷰와 포스트를 비교해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어휘구사나 표현능력, 논리적 사고 등 다양한 범위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조현병이 있을 때는 환각, 환청, 망상, 정서적 안정성의 균열 등이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능에 영향을 주는 것, 정상적인 사고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오히려 약이다. 복용하는 약들 중 하나를 의사의 권유로 빼게 된다거나 하면 불안정하던 정서가 오히려 안정되어감을 자각하기도 한다. 약은 뇌에 작용을 하기 때문에 지적 기능뿐만이 아니라 정서적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약을 복용하는 동안은 환각과 망상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내 병이 만성적이라고 통보하여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빼앗아갔다. 그렇게 나는 그 곳에 갇혔고, 단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공허함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허함이었다. / p60
실제로 모든 병원에서 조현병은 만성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죽을 때까지 약을 먹으라는 거다. 저자 아른힐 레우뱅처럼 조현병을 이겨내고... 그러니까 약을 끊고도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다. 공허함과 외로움 그것이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동반해야하는 장애 중 하나가 된다.
저작 전체에서 아른힐은 자신의 증상에 정직하고 세밀하게 마주하고 있다. 그녀의 증상을 보다보면 그녀가 어떻게 조현병을 이겨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서도 이겨냈다면 다른 환자들도 나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게도 된다. 그녀의 감성과 사실과 각오가 어우러진 이 자서전은 실제이기에 희망을 준다. 조현병 경험이 있거나 조현병 환자가 가족이나 친지 중에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갈 책이지만 삶의 막다른 길에 서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누구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아른힐은 학창시절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고독감과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모든 색깔의 크레파스를 다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다가 발병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몇차례나 재입원하고 긴 요양생활을 한다. 그녀에게 어느날 치료사 한명이 스케치북에 네모 하나를 그리고는 그녀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네모 뒤에 숨어있는게 무언지 그녀의 숨은 심리를 알고 싶어하는 치료사의 속셈을 알아채고는 그녀는 여러 그림과 색깔로 스케치북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자신의 모든 이야기 맨 마지막에 그녀는 짚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 이렇게 말한다.
내 페이지는 비어 있지 않다. 네모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아무 것도 망가뜨리지 않는다 . 이것은 전체의 일부며, 내 인생의 일부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해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색깔을 전부 사용했다. / p260
나는 모든 색깔을 다 사용하고 있는가 자성하게 하는 글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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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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