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나누다
Joy
- 작성일
- 2020.7.11
당신이 옳다
- 글쓴이
- 정혜신 저
해냄
"당신이 옳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으며,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앞, 뒤 없이 담백하게 다가오는 이 짧은 문장, “당신이 옳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내 그 문장을 읽을적 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따뜻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 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 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p.49
당신이 옳다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적절치 않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누군가가 항상 옳을 수 있을까, 무작정 옳다고 말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그르치게 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옳다‘가 달리 말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다‘의 뜻이라는 설명에는 작은 감탄이 나왔다. 누군가 내 생각과 행동의 이유에 귀 기울여 준다면, 결과만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그 아래 숨겨진 과정을 함께 들여다 봐준다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50
서로가 가진 고민의 끝에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 노력하는 이에게 종종 “객관적인 해답은 다른 사람들도 해줄 수 있어. 나는 그냥 내 편이 필요한 거야.”라고 울음 섞인 투정을 부리는 것 역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객관적인 해답을 내려주기 전에 그래, 힘들었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네가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고 먼저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제발 시비에 대한 판단은 그 다음에 해 주었으면).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p.48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저자가 건넨 “당신이 옳다”는 말에 위로는 받았다면,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는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는 동시에 내 주변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물음이었다. 잘 지내지? 어떻게 지내? 많이 바쁘지? 물론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 속에는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지, 기분은 괜찮은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요즘 마음이 어때?”라 물어보면, 글쎄..나는 순간 멈칫하지 않을까? 그 세심함에 한 번, 그리고 정말 요즘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보기 위해 또 한 번.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p.58
누군가 나의 마음에 대해 신경쓰고 물어봐준다면, 적어도 이 각박한 사회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은 덜하지 않을까.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공감이 화두인 사회이다. 그만큼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일게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때때로 ‘너는 네가 알아서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 봐달라’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좋게 해석해 남에게 모진 말을 못하고, 달리 해석하면 혼자 끙끙 앓는 편인 나는 이런 경우가 어렵다. 무언가 한마디 해야지, 하다가도 그래, 내가 잘하면 되지 하면서 접어두기 일쑤다(이러다가 혼자 폭발하기도 하지만).
너를 공감하는 일과 내가 공감받고 싶은 일이 있을 땐 항상 내가 공감받는 일이 먼저다. 내가 공감받아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너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pp.275-276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예외가 없다.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pp.193-194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오만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과연 타인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를 포용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가 감당해야할 몫이 있는 것이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주변과도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p.171
다시, "당신이 옳다."
저자가 온 체중을 실어 전한 이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지친 날 위로를 줄 것 같다. 어쩌면 저자가 해주고 싶었던 것도 그 말이 아니었을까? 책에 빼곡이 적힌 여러 가지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 한 문장, 당신이 옳다는 그 말을 기억하고 위로 받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p.53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일주일에 한 번은 나에게 ‘마음이 어떠한지’ 물어보기(적용기한 : 지속)
두울. 쑥스럽지만..친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어떠한지’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 하기(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急電)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p.39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 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다. p.47
고급 정장에 계급장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를 주목하고 인정해 준 사람보다 내가 맨몸이었을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극진히 보살펴 준 사람은 뼛속에 각인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 p.68
사람들은 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 마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 여긴다. 아니다. 정반대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p.80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날씨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화창하고 맑다가 바람이 불기도 하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예고 없이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쓰나미가 덮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지개가 걸린다. p.86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p.92
치유란 특정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던져주는 전문적인 코멘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뒤엉킨 자동차들처럼 상처 입은 자기 마음결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보고 만지고 확인하고 느끼며 분리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뒤엉켜 있던 마음결을 안개가 걷힌 후의 풍경 보듯 하나씩 또렷이 보는 일이다. p.152
사람 마음은 외부에서 이식된 답으로는 절대 정돈되지 않는다. 답은 밖에서 오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서 발견돼야 내게 스미고 적용된다. p.152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받는 일이다..(중략)..타인을 구심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p.189
경계가 무너지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도 오히려 비난과 공격을 더 받게 된다. p.198
’내가 그렇게까지 애쓰면 그래도 고마워하겠지, 내 노력을 알아주겠지‘ 하는 A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건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인식 속에서도 사라진다. 회피도 충성도 답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p.204
감정 통제를 잘해야 어른이고, 그래야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이성으로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잘못되고 위험한 통념이다. p.217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p.219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 불안을 느낀다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할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왜 그런 걸까?‘ 곰곰이 나와 내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p.220
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중략)..아니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p.270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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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